가장 오래된 국제 현대미술제이자 막강한 권위를 자랑하는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오는 11일 공식개막을 앞둔 가운데 비엔날레와 연계된 특별전들도 속속 막을 올리고 있다. 이 중 한국전시로 고(故) 윤형근(1928~2007)과 이강소(76)의 특별전이 눈길을 끈다. 1970~80년대 왕성하게 활동한 거장들의 옛 작품들을 베니스로 다시 불러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으로 열린 ‘단색화’ 전시와 이어 2017년 이승택 등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미술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의 연장 선상에서도 볼 수 있는 전시들이다. 11월24일까지 열리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는 김현진 큐레이터가 이끄는 한국관 전시에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 작가가 참여하고 본전시 초청작가 79명에는 이불, 아니카이, 강서경이 포함됐다.
◇베니스로 수출된 윤형근=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이자 ‘단색화’ 대표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윤형근의 전시가 8일(현지시간) 개막행사 후 11일부터 11월24일까지 포르투니 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윤형근 전시는 지난해 8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개막식에 포르투니 미술관장이 참석했다가 작품에 크게 감동했고 양측 미술관의 협약으로 이번 베니스 전시가 성사됐다. 윤형근과 베니스의 인연은 각별하다. 지난 1995년에 개관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첫 전시에 참여한 작가가 바로 윤형근이다. 당시 한국관은 윤형근과 곽훈, 김인겸, 전수천 등 4명이 채웠다. 24년 전에도 윤형근은 모더니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추상작품이지만 그 내용에서 동양의 정신성과 현대미술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비록 고인이 됐으나 개인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는 유화 40여 점과 드로잉 40여 점, 아카이브 100여 점이 선보인다. 지난해 서울관 출품작과 비슷하나 포르투니 미술관의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어우러져 독특한 미감을 보여준다. 포르투니 미술관은 디자이너였던 마리아노 포르투니(1871~1949)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베니스 시에 기증한 곳이다. 총 4개층 중 3개층에서 전시가 진행되며 일부 공간에서는 포르투니와 디자인 작업과 윤형근의 작품이 나란히 선보이기도 했다. 역사를 축적한 건물과 무심(無心)한 듯 자연스럽게 걸린 윤형근의 작품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다시 보는 ‘앞서 간’ 이강소= 전위부대라는 뜻의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작가 이강소는 늘 앞서 갔다. 일찍이 1975년 제9회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한 그는 살아있는 닭의 발목을 멍석 위 말뚝에 묶어 반경 570㎝의 공간을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했다. 멍석 주변에 흰 가루를 뿌려놓으니 3일간 닭이 움직인 흔적은 고스란히 작품이 됐다. 이강소의 대표작 ‘무제 75031’은 당시 유럽에서도 파격이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작가는 “계산된 의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의도 너머에서 이뤄지는 일종의 여분(餘分)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강소의 1970년대 실험작품부터 최근작인 회화·조각 등 20여 점을 선보인 전시 ‘비커밍(Becoming)’이 7일 팔라조 카보토에서 개막했다. 전시장은 아시아 대륙을 찾으려 했고 결국엔 캐나다 지역을 발견한 탐험가 카보토 가족이 15세기 후반까지 살았던 곳으로 베니스 현지에서는 ‘행운의 집’으로 통한다.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관객 접근성도 좋다.
전시에는 이강소의 대표작인 ‘닭 퍼포먼스’를 포함해 ‘회화 (이벤트 77-2)’도 선보였다. 벌거벗은 작가가 자신의 몸에 붓으로 물감칠을 한 후 광목 천으로 닦아낸 1977년의 작품이다. 자연 속 갈대를 전시장에 옮겨놓은 1971년작 ‘여백’은 본래의 공간을 떠난 존재가 전하는 새로운 경험이 묘미다. 이강소는 보수적인 대구 출신이지만 일찌감치 ‘신체제’ ‘AG그룹’ ‘대구현대미술제’ 등의 미술 운동을 벌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실험 미술가로 자리 잡았다.
작가는 특정한 상황을 구축한 후 관객을 끌어들여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각본 없는 드라마’로 잘 알려져 있다. 서양미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풍류’의 태도로 작업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서울 명동화랑의 첫 개인전 때는 전시장에 ‘그림’없이 선술집을 차려놓았던 그다. 최근에는 자율적인 붓의 움직임으로 회화를, 던져진 흙덩이로 조각을 하고 있다. 전시는 6월 말까지 이어진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SBS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비엔날레 본전시관 입구 해군장교클럽의 ‘베니스 미팅 포인트’에서 노순택·오인환·임민욱·문경원·전준호 등의 한국미술 팝업전을 7~11일 개최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베니스비엔날레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과 우리 미술관을 세계 무대에 소개하고 아시아 대표 미술관으로서 국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면서 “큰 울림을 선사하는 윤형근 작품의 아름다움과 역동하는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니스=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