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김씨

임희구 作

1515A38 시로여는수욜



쌀을 씻어 안치는데 어머니가 안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나는, 김씨! 하고 부른다

사람들이 들으면 저런 싸가지 할 것이다

화장실에서 어머니가

어!

하신다

나는 빤히 알면서도

뭐해?

하고 묻는다

어머니가

어, 그냥 앉아 있어 왜?

하신다

나는

그냥 불러봤어

하고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인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똥을 누려고


지금 변기 위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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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여든다섯이다

나는 어머니보다 마흔한 살이 어리다

어려도

어머니와 아들 사인데 사십 년 정도는 친구 아닌가

밥이 끓는다

엄마, 오늘 남대문시장 갈까?

왜?

그냥

엄마가 임마 같다

저런! 어머니를 김씨라 부르다니. 반말을 예사로 하다니. 변기에 앉아 일대사 치르는 분을 ‘그냥’ 불러 보다니. 동갑내기 친구처럼 맞먹다니, 엄마에서 점 하나까지 떼먹다니. 어쩌면 우리 집 셋째형님과 똑같은 싸가지일까. 하지만 존댓말 깍듯한 자식은 어려워하셔도, 셋째형님을 제일 좋아하셨지. 부모님 연세 드실수록 공경하며 거리 두는 것보다, 친구 같은 자식이 제일 효자라지.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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