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패스트트랙, 본래 의미 살리려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다수라도 힘의 논리에 의존말고

타협·합의처리가 선진화법 의도

대화·토론 정도 걷는 모습 보여야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쓴 여야의 극단적 대립을 막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015년 개정된 국회법의 핵심적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 과반의석을 확보한 다수의 일방적 의사결정을 막고 회기 종료시까지 충분한 토론을 하도록 하되 쟁점법안에 대한 토론을 신속처리절차(패스트트랙)에 따라 종결하기 위해서는 5분의3 이상의 다수를 요하도록 했고 이 경우 상임위원회는 180일 이내, 법사위원회는 90일 이내에 안건을 처리하도록 했으며, 이후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되도록 했다. 둘째, 의장 직권에 의한 일방적 본회의 상정을 막고 천재지변,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의 경우에만 의장이 본회의에 직권상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필리버스터’로 알려진 무제한 토론을 도입해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가 가능하게 됐다. 안건조정위원회 및 예산안 심의기간 등에 관한 사항이 있지만 핵심은 위의 세 가지이다.


그동안 패스트트랙이 활용된 예는 많지 않으나 나름 역할을 했고 국회선진화법 적용에 따라 지난 4년 동안 비록 ‘식물국회’라는 비아냥은 있었지만 ‘동물국회’ 현상은 잦아들었다. 그런데 최근 선거법 개혁에 대한 패스트트랙에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강력히 반발해 국회의 정상적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다. 더욱이 여야 4당의 공조 또한 바른미래당의 내부적 갈등으로 흔들리는 가운데 패스트트랙에 올려놓은 공직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이 좌초할 경우에는 국회선진화법의 근간이 무너져내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여야 4당이 다수를 앞세워 패스트트랙을 강행한 것이 문제의 근원인가. 아니면 한국당이 패스트트랙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가.


패스트트랙의 도입 취지는 다수에 의해 안건을 일방적으로 처리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수파가 토의 과정을 생략하고 다수의 힘으로 안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소한의 토의기간으로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의 기간을 인정한 것이다. 그 기간에 이견을 좁힐 수 있는 토론의 기회를 계속 갖도록 한 것이 패스트트랙의 본래 의미다.

관련기사



패스트트랙의 의미는 다수라고 하더라도 힘의 논리에 의존하지 말고 최대한 타협과 조정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합의로 안건을 처리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여야 4당과 한국당 모두 문제를 안고 있다. 대화와 토론에 앞서 다수의 힘으로 패스트트랙에 따른 법안 관철을 공공연히 내세운 것도 문제고 한국당이 대화와 토론을 거부하고 장외로 나간 것도 문제다.

정치적 셈법을 따져보면 서로가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 4당은 이렇게 법안을 관철시킴으로써 얻는 이익을 고려하고 있고 한국당은 강력한 반대로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독일에서 “의회 내 토론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사당 창밖을 향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각 정당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유권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선거에서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를 고려한 것이다.

유권자들은 여야 4당과 한국당 중 어느 쪽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특정 정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핵심 지지층에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중도 계층의 다수의 국민들은 양비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잘했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보다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누가 먼저 희생하고 양보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다. 국민을 믿고 먼저 대화와 타협에 나서는 정당이 오히려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믿고 정도(正道)를 걷는 정당의 모습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