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더 많은 ‘반성문’을 기대한다

임석훈 논설위원

고용·성장률 지표서 잇단 경고음

정부, 결국 정책 부작용 공식확인

문제 인정하는덴 용기·결단 필요

냉정한 평가·대안 모색 이어져야

목요일아침에 칼럼 사진



# 이달 7일 이재갑 장관 주재로 열린 고용노동부의 고용정책심의회. 이 자리에서 고용부는 ‘일자리사업 평가 결과 및 개선 방안’ 자료를 내놓았는데 전과는 많이 달랐다. ‘나아지고 있다’거나 ‘시간이 흐르면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식의 낙관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성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일자리 예산을 19조2,000억원 쏟아부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일자리사업에 참여한 인원은 총 831만명. 생산가능인구(15~64세, 지난해 3,680만명)로만 나누면 5명 중 1명이 정부의 일자리지원금을 받은 셈이다. 정부가 예산을 들여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에는 81만4,000명이 참여했는데 사업이 종료된 후 민간 일자리로 연결된 취업률은 16.8%에 불과했다. 83.2%는 정부가 뿌린 돈만큼만 일하고 다시 실직자 신세가 된 것이다. 진지한 고민없이 보여주기식으로 급조된 정책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장년고용안정지원금과 고용안정장려금 사업은 근로시간 단축지원제도의 대상이 장년인 것을 제외하고는 비슷하다. 여성 고용환경 개선을 위한 고용장려금은 정책의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금전 지원 방식만 다를 뿐 두 정책이 똑같이 직장어린이집을 지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또 직업훈련 비용의 자기 부담률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구직자들의 ‘훈련 쇼핑’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킨 측면도 있다고 고용부는 적시했다.


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자리사업 일몰제를 도입하고 각종 사업을 통폐합하는 대책도 제시했다. 지난 21일에는 최저임금 영향분석 토론회를 열고 최저임금 과속이 도소매업 등 일부 업종의 고용 감소를 초래했다고 고용부는 인정했다. 현장 실태 파악을 통해 고용 부진에 대한 정책적 과오를 정부가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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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6회 ‘법의 날’인 지난달 25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이런 내용의 축사를 했다. “오늘날 사법부의 현실과 국민이 염원하는 사법부의 모습에 간극이 있음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법과 질서만 강조하는 오만한 자세로 법을 집행하면 국민들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법조 수장들의 반성문은 대한민국 법조계의 부끄러운 현실 때문일 것이다. 법원과 검찰 앞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를 다녀봐도 보기 힘든 광경이 매일 벌어진다. 수사와 재판 결과에 불만을 가진 국민들이 검사·판사의 실명과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내걸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 등에서 소득주도 성장, 적폐청산 등에 대한 자화자찬이 넘쳐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부처의 자기반성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책 부작용을 인정하는 것은 특히 용기가 필요하다. 이 장관이 “실질적인 사업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일자리사업의 성과를 높여나가겠다”고 한 말은 그래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 같다. 정책은 양면성이 있는 만큼 당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정책 목표라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역효과가 나타나거나 저항에 부딪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다른 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정책은 타이밍이고 수요층과의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국민·기업 등 수요자의 수용성은 생각하지 않고 당위성만 앞세워 밀어붙이는 정책에 대한 우려가 높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골자로 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 등에 대해 정부 내부에서조차 “속도와 방향이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다.

이런 시점에 나온 일부 부처의 고백은 공식적인 자성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싶다. 정부가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더라도 성장률·고용 등 많은 경제지표는 현재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바꿔나가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때라는 얘기다. 정책을 냉정히 평가해 대안을 모색하는 반성문을 더 보고 싶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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