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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포춘] 당신 차 안의 스파이

THE SPY INSIDE YOUR CAR

이미지=US포춘이미지=US포춘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디지털 조수’는 운전자들에게 편리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수집하는 정보를 둘러싸고 심각한 프라이버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오던 운전자가 주말 계획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의 ‘디지털 조수’에게 일정 체크를 요청한다. 그러자 몇 초 안에 차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조수는 운전자에게 “친구 생일 파티에 참석할지 여부를 알려줘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그리고 생일 선물로 미식축구팀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Detroit Lions의 점퍼를 제안한다.

운전자가 ‘디지털 조수’에게 점퍼 주문을 요청한 지 2분도 안 돼 이 모든 과정이 끝난다. 한편 차내에서 이뤄진 대화는 멀리 있는 데이터센터로도 전송된다. 설령 운전자가 미식축구를 싫어해도, 이 정보는 훗날 NFL 게임 홍보광고를 위해 사용된다. 한때 투박하고 허접했던 음성인식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 빠르게 차내 대시보드에 장착되고 있다. 그에 따라 운전자는 자연스런 대화 형식으로 좀 더 다양한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다.

운전자가 전방에만 집중하도록 고안된 ‘개인 조수’는 인공지능에 의해 작동된다. 일정 관리부터 아마존 프라임 주문까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스마트 홈 기기들과 동기화 되면, 이 소프트웨어는 수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집안 온도조절 장치를 켜고, 조명을 끄고, 문단속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마존 알렉사, 애플 시리, 구글 어시스턴트를 차내에서 활용하는 혜택이 엄청난 만큼이나 사생활 보호와 수집된 정보의 활용 방식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워싱턴 D.C.의 소비자 보호단체 ‘전자 사생활 정보센터(Electronic Privacy Information Center)’의 변호사로 일하는 크리스틴 밴넌 Christine Bannan은 “소비자들에겐 차내 음성인식 시스템 사용에 대해 걱정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이들이 신기술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시장조사업체 IHS 마킷의 추산에 따르면, 내년에는 약 1억 2,000만대의 차에 음성인식 시스템이 탑재될 전망이다. 지난해 400만대에서 무려 3배나 증가한 수치이다. 현재 대부분의 차내 시스템은 스마트폰 기반이다. 하지만 아마존과 구글은 휴대폰에 연결하지 않아도 작동할 수 있는 선탑재 기기들(embedded devices)을 개발하고 있다.

자동차 리서치 업체 오토퍼시픽 AutoPacific의 부사장 에드 킴 Ed Kim은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는 현재 가장 싼 차량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며 “앞으로 5년 내에 대다수 신차들이 어떤 형태로든 음성인식 시스템을 갖출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좀 더 많은 운전자들이 음성 신호나 화면 경고를 통해 자신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에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의미다. 가령, 이 기술들은 운전자에게 근처 매장에서 할인행사가 진행 된다거나, 동네 스타벅스를 지나칠 때 미리 주문한 그란데 라떼가 준비됐다고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제조업체와 마케팅업체 등 다른 기업들은 얻을 게 훨씬 많을 수 있다. 인공지능이 운전자 사투리와 액센트, 대화체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하게 되면, 자동차는 주인의 행동을 훨씬 더 심도 있게 파악하고, 그 정보를 다른 기업들과 공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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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당신의 쇼핑 습관과 즐겨 찾는 장소를 아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보들은 맞춤형 오디오나 시각 광고를 만들거나, 구독 서비스를 판매하거나, 제3의 업체들이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사용될 수도 있다. 아마존과 구글, 애플이 차내에 기기를 설치해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할수록,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는 더 크게 늘어나게 된다.

현재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그 동안의 개발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할 것이다. 실제로 일부 업체들은 독자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 아마존과 애플, 구글의 기술을 포기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올해 자체 시스템을 선보이면, 제조업체들은 운전자 데이터를 놓고 IT 대기업들과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킴 또한 “앞으로 몇 년 간 사용자 데이터와 달성 가능한 매출을 놓고 일대 혈전이 펼쳐질 것”이라 전망했다.

차내 기기들은 “이봐, 알렉사” 같은 ‘작동형’ 문구에만 반응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 과정에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사용자들이 전하는 일화 중에는 재미있는 것도 있지만 섬뜩한 경험도 있다. 가장 우려되는 사고는 기기들이 대화 내용을 녹음해 운전자 휴대폰에 저장된 지인들에게 보내거나, 무심코 대량구매를 하는 것이다. 이미 아마존은 의도치 않은 주문을 예방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고객들이 음성으로 구매를 할 경우 PIN 번호를 정하고, 최종 주문을 내기 전 다시 한번 번호를 확인하는 것 등이다.

현재 자동차업체들은 ‘마케팅 목적으로 수집한 개인정보를 사용하거나, 제3자와 공유할 경우 고객들에게 사전 승인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볼보는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기술은 ‘글로벌 수준의 합법적인 보안과 사생활 보호 의무를 준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용자들이 그들의 개인정보 공유 과정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도록 유럽연합(EU) 법률을 지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존 대변인은 “자동차업체들의 고객경험 개선을 돕기 위해, 익명으로 처리된 전체 실행 데이터를 공유할 뿐”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자동차업체나 개발업체에게 개인식별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BMW는 자체 수집 데이터를 공유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수익을 거두는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BMW의 디지털 제품 총괄 부사장 디터 메이 Dieter May는 “고객이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대규모 콘서트가 열린다는 걸 우리가 알게 됐다. 그러면 우리는 영업사원들이 고객에게 특별 티켓을 제공할 수 있도록 그 사실을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들이 보안 문제에 대처하기 시작한다 해도, 누가 수집되는 정보를 관리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의 커넥티드 모빌리티 담당 로저 랭크토트 Roger Lanctot는 “음성인식은 최근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다. 최고의 음성인식 기술을 갖춘 업체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며 “승자독식의 이 세계에서 승리는 매우 수익성 높은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Jaclyn Trop 기자

안재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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