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병기준 모호...'게임 장애자' 낙인 안돼

게임중독 질병 지정 - 반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

● '두뇌에 대한 영향' 연구 엇갈리고 데이터 부족

● 장애발생 원인, 사회경제적 환경도 무시 못해

● 의사따라 진단 다를수 있어 도입 신중 기해야

게임중독(게임이용장애)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을 두고 찬반이 맞서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는 28일(현지시간)까지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보건총회에서 ‘국제질병분류 개정안(ICD-11)’에 게임중독의 질병 정식 등재를 논의하는데 27일께 등재가 확실시되고 있다. 등재가 확정되면 2022년부터 공식 질병으로 분류된다. 보건복지부가 WHO총회의 결정을 따른다는 입장이어서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도 2022년 이후 게임 과몰입이 질환으로 등재될 수 있다. 게임중독자가 적극적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게임업계에서는 질병 등재가 결국 게임규제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한다. 찬성 측은 게임에 과몰입하는 청소년의 건강과 성장을 위해 질병 정식 등재를 통해 진단치료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게임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고 게임장애 진단의 판단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청소년 등 이용자를 ‘게임장애자’로 낙인 찍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조만간 총회를 열고 게임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5월 코드 지정을 한 차례 연기한 WHO는 지난달 말 집행위원회에서 미국만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을 뿐 다른 집행이사국은 ‘게임장애 코드’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WHO는 질병코드를 지정했다 철회한 뼈아픈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동성애가 그것이다. 혹시 ‘교정 강간’이라는 말을 아는가. 교정 강간이란 동성애자들을 성적으로 교정한다는 미명하에 동성애자들에게 행한 성폭행이다. 성폭력만이 아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동성애자를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심지어 이들에게 전기고문을 자행하기까지 했다. 이런 야만적인 행위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미국정신의학회(APA)와 WHO가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동성애를 질병코드에서 제외한 것은 APA의 경우 지난 1973년이 돼서야, 그리고 WHO는 지정 28년 만인 1990년 ‘성 전환증과 성 주체성 장애’라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신과 진단항목을 삭제하면서였다.


게임장애 코드 지정은 전 세계적인 논란에 휩싸여 있다. 게임장애에 대한 코드 지정은 신중해야 한다. 우선 연구와 데이터가 부족하다. WHO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APA는 현재까지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을 유보하고 있다. APA는 그들의 질병코드분류체계인 ‘DSM-5’에서 ‘더 많은 연구와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지정을 유보하고 있다. 게임이 건강 특히 두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게임중독자의 뇌가 마약중독자의 뇌와 유사하다는 연구를 발표하고 있지만 그것이 게임이 원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으로 이미 변화된 것인지는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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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게임 질병에 대한 판단 기준의 모호성이다. WHO는 게임장애의 기준으로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 손상, 삶의 다른 관심사 및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것,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지만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것’ 등 세 가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진단 기준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이 돼야 장애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예를 들어 최근 자동실행 기능이 들어간 스마트폰게임이 많은데 이는 게임을 실행시켜 놓고 가끔 결과만 확인하는 형태의 게임으로 ‘방치형 게임’으로 불리기도 한다. 반대로 PC로 하는 전통적인 게임은 이용자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과연 전자를 10시간 하는 것과 후자를 3시간 하는 것, 어느 쪽이 더 문제일까.

셋째, 인과관계의 모호성이다. WHO는 게임이 장애의 원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어 게임 과몰입이 발생하는 것인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게임이 원인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 있는 상태에서 결과적으로 게임장애에 빠진다면 아무리 게임을 제거하려고 해도 끊임없이 게임장애자가 생겨나는 딜레마에 직면할 것이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 게임 과몰입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발견한 것이 게임 과몰입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조손가정이나 가난한 맞벌이 가정 청소년의 경우 학교에서 집에 오면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방치되는 경우가 많고 이들 청소년이 장시간 게임을 하는 패턴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경우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게임이라는 결과를 막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아닌 다른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야외스포츠나 예술활동 등은 대표적인 게임 외 활동이 될 것이다.

공공의료에서 의사들의 공헌과 노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모든 노력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청소년에 대한 판단은 더욱 그렇다. 게임장애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고 따라서 진단하는 의사에 따라 전혀 다른 진단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의사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정받은 청소년도 게임에 부정적인 의사를 만나면 평생 ‘게임장애자’라는 낙인이 찍혀 살아야 한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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