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토요워치] SNS로 흥한 자, SNS로 혼쭐나리

■무엇이 인플루언서 권능을 앗아갔나

뿔난 소비자들 ‘까계정’으로 목소리 낸다

‘임블리’ 인스타그램 까계정인 ‘임블리 쏘리’ 계정주가 25일까지 집단소송 신청자를 모집하고 있다. /자료=인스타그램 캡처‘임블리’ 인스타그램 까계정인 ‘임블리 쏘리’ 계정주가 25일까지 집단소송 신청자를 모집하고 있다. /자료=인스타그램 캡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한 거래는 판매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워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대처하기 매우 힘든 거래행위로 꼽힌다. 소비자가 판매자에게 접촉할 수 있는 창구가 다이렉트메시지(DM)나 댓글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를 통해 물품을 구매했다가 피해를 입어도 판매자가 DM에 응답하지 않으면 소비자 혼자서 대처할 방법이 없어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임블리(임지현 전 부건에프엔씨 상무)’의 ‘호박즙 곰팡이’ 사태를 계기로 소비자들의 대응이 확연히 달라지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손해를 보더라도 보상 절차가 복잡하고 제품가도 낮아 쉽게 포기했다면 이제는 집단을 이뤄 적극 대응하는 쪽으로 판매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해사항 따질 때 메시지·댓글 의존했지만

아예 계정 만들어 사례 접수·집단소송 준비

공정위·식약처 등 정부기관엔 제보자 역할




매개체는 역시 SNS다. 판매자들이 SNS를 통해 손쉽게 제품을 홍보하고 팔아치운 만큼 소비자들 역시 SNS 계정으로 피해자들을 모집하고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전략은 일명 ‘까계정’으로 불린다. 까계정은 ‘XX를 까는 가계정’을 뜻하는 신조어로 인스타그램 장터에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의 불만을 수집하는 창구로 활용된다. 이곳에서 소비자들은 유명 ‘팔이피플(소셜미디어 셀러)’들의 제품을 품평하면서 품질 불량, 디자인 베끼기, 과장 광고 등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다른 예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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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계정의 역할은 단순히 소비자 불만 창구로 그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인플루언서 장터 규제 관련 유관부서에 중요한 제보자 노릇을 한다. 예컨대 식약처는 임블리 논란을 의식하고 지난 17일 부건코스메틱 화장품 ‘블리블리 워터 물광밤’에 대해 5월31일부터 8월30일까지 3개월간 광고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주름이 채워지고 속눈썹이 자라는 역주행 대란’이라는 과도한 표현을 사용하며 제품을 판매한 탓에 의약품으로 오인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이유다.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정부의 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2018년 공정위가 운영을 시작한 소비자 감시요원들의 경우 지난 한 해에만 SNS 마켓 분야에서 판매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교환·환불을 거절하는 행위 등 총 879건을 제보 처리했다. 까계정 등 온라인상에서 소비자들이 불만을 제기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공정위는 제보 건 가운데 705건에 대해서는 자진 시정을 요구했다.



2515A04 피해비율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까계정 등 SNS 플랫폼을 발판으로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유명 임블리 까계정인 ‘임블리 쏘리(Imvely_sorry)’의 집단소송 신청이 그 대표 사례다. 임블리 쏘리 계정주는 이달 21일부터 25일까지 소비자들의 집단소송 참여 신청을 받고 있다. 계정주는 이를 위해 피해 소비자들에게 이름과 휴대폰 번호, 주소 등 신상 정보는 물론 제품 사용 기간, 피해 사진, 구매 내역 등을 요구했다. 계정주는 “소장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은 추후에 (집단소송을) 신청하고 싶어도 별도로 소송을 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의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집단소송이) 가능하다”고 독려했다.

지난해 9월 대형마트 제품을 수제 쿠키로 속여 판매하다가 적발된 ‘미미쿠키’ 사태 때도 피해자들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 등 SNS를 통해 집단소송 준비에 나서 업주를 압박한 바 있다. 당시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인 남편 김모씨와 아내 표모씨는 아기 태명인 ‘미미’를 상호로 가게 문을 열고 ‘내 아이에게 먹일 수 있는 정성으로 유기농 수제 쿠키를 만든다’며 제품을 홍보해 맘카페의 큰 지지를 받았다.

물론 인플루언서 시장이 아직 초기인 만큼 기존 소송 사례나 판례는 거의 없다. 이번 임블리 사건이 실제 집단소송까지 이어질 경우 인플루언서 부정 판매 분쟁에 대한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사회적 잡음으로만 지나치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플루언서 시장에 대한 안전판 확보와 시스템 안착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플루언서 사건의 경우 실제 피해 상황이 크지 않고 실상 판매자의 정직성 문제인데도 상호 소송 등 확전되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SNS 등의 영향으로) 사회가 점점 연결되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이 같은 갈등이 사회 현상처럼 번지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출신의 강용석 변호사도 “(부건에프엔씨의 안티 계정 폐쇄 방해금지가처분신청 관련 소비자 측 변호는 물론) 임블리 쏘리 측이 준비하는 집단소송도 법률대리를 하게 됐다”며 “부건 측이 폭로 글의 허위 입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승소를 확신한다”고 설명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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