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ises are over, but the fury remains)
최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는 어느 쪽이건 얼마간의 승리를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엇갈린 결과를 내놓았다.
우익 포퓰리스트 진영이 강세를 보였지만 녹색당 같은 극좌파 정당들 역시 기세를 올렸다.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은 지난 1945년 이후 유럽 정치판을 호령했던 전통적 정당들이 대중적 지지를 잃으면서 기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선거는 종종 뒷북을 쳐대며 사회 변화의 지표 역할을 한다. 대체로 어떤 이슈가 고비를 넘긴 후에야 대중은 비로소 문제를 인식하고 개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서방 포퓰리즘에 기름을 부은 것으로 여겨지는 두 가지 이슈는 이민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제적 기회의 결핍이다. 이들 모두 고비는 넘긴 듯 보이지만 분노는 여전히 남아 있는 사례다. 유럽연합(EU)으로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의 수는 지난 5년래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8년에는 약 11만5,000명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2015년도에 비하면 무려 89% 감소한 수치다. 이는 EU 회원국들이 북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들의 국경 강화와 경제개발 촉진을 위해 전보다 긴밀하게 협력하는 한편 훨씬 엄격한 난민 신청 자격 조건을 마련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현재 난민 신청자들은 2대1의 비율로 기각 판정을 받고 있다. 2015년의 1대2와 완전히 뒤바뀐 수치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 입후보할 당시 목청을 높인 이슈인 멕시코 불법 이민은 수년째 기존의 흐름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 출신 불법 체류자의 수는 150만명 감소했다.
최근 트럼프의 격분을 불러일으킨 이른바 ‘캐러밴’으로 불리는 중남미인 집단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입국하지 않고 대신 국경검문소에서 난민 신청을 한 후 미국의 처분을 기다렸으며 이들 중 극히 일부에게만 난민 자격이 주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서구에는 더 이상 이민 위기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업과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는 중산층 임금 등 포퓰리즘에 연료를 공급한 다른 문제들의 경우는 어떨까. 대선 유세전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실질적 실업률이 42%에 달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당시 그가 그린 중산층의 삶은 불안정한 파트타임 일자리,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임금, 사라지는 베니핏으로 고통받는 우울한 모습이었다.
최근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 마음속에 깊숙이 각인된 그의 그림이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대부분의 부유한 국가들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자리 붐을 경험하고 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3분의2가 근로연령에 속한 인구의 기록적인 고용률을 목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3.6%로 반세기만의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불안정성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일자리 부문에서 임시직이 주도하는 긱 경제의 비중은 1% 내외에 불과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탄탄한 고용시장이 최저임금법과 맞물리며 임금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이들 가운데 어떤 것도 부유국의 최상위층에서 제외된 사람들까지 안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스태그네이션이라는 그림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다.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실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는 이탈리아처럼 고질적인 고실업에 시달리는 국가들의 경우 노동법과 노동조합이 기존의 근로자들은 보호하되 신규 진입자들을 노동시장 밖으로 밀어내려는 성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진보적이고 민주적이며 자본주의적인 사회에서는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모든 책임을 정치와 경제 시스템에 돌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대중은 비민주적이거나 비자본주의적인 국가의 국민들을 감탄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들 자신이 갖고 있는 기존의 시스템과 다른 모델을 추구한다.
서구가 스태그네이션과 정치적 오작동의 늪에 빠진 반면 안정된 소련은 전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던 1970년대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1975년 미국·유럽·일본으로 구성된 삼국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는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제목이 붙은 유명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스태그네이션은 완전히 끝났고 서구는 번영을 구가했으며 소련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열린 사회는 그들의 문제가 만천하에 공표되고 이에 대한 소란스러운 논의가 펼쳐지기 때문에 종종 허약한 듯 보인다. 이 같은 소음에 묻혀 수면 위로 떠오른 시장과 시민사회 그리고 정부의 문제들에 대한 활기찬 응전은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개방적이고 반응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민주적인 자본주의 사회는 설사 포퓰리스트 세력이 지속적으로 기만과 실망·선동을 일삼는다 해도 대중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고 그것에 적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