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096770)이 LG화학(051910)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맞소송을 제기하며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양측 간 소송이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중재를 위해 물밑에서 애쓰고 있지만 서로의 입장이 완강해 접점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포스트 반도체’로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이들 업체 간 분쟁이 계속될 경우 중국과 일본 등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영업비밀 침해가 전혀 없었다는 내용의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고 10일 밝혔다. LG화학은 지난 4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기술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LG화학의 소송 제기 직후 “인력 빼가기가 아니라 지원자 스스로 이직을 선택한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이번 소송이 그 후속조치인 셈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이번 소송 제기와 관련해 “국내 대기업 간 선의의 경쟁을 바라는 국민적 바람을 저버리고 근거 없는 비난을 계속해온 상황에서 이를 더는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소송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고객, 구성원, 사업가치, 산업 생태계 및 국익 등 5가지 보호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LG화학의 소송은 ‘일단 소송을 제기해서 확인하겠다’는 이른바 ‘아니면 말고 식 소송의 전형’”이라며 “2011년 LG화학이 제기했던 리튬이온분리막(LiBS) 사업 관련 소송은 1·2심에서 패소한 후에야 합의종결한 바 있는데 이번에도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LG화학은 서울중앙지법에 SK이노베이션이 분리막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특허심판원과 서울중앙지법이 LG화학의 패소를 각각 판결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소송에서 10억원을 우선 청구하고 향후 손해를 구체적으로 조사해 손해배상액을 추가로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이번 법적 조치는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이를 포함한 추가 조치가 계속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LG화학 측은 이와 관련해 입장자료를 내고 “자사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위한 법적 조치를 두고 경쟁사에서 맞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주장하는 산업 생태계 및 국익 훼손에 대해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ITC에서 ‘조사 개시’를 결정한 사안에 대해 근거 없는 발목잡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상황을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며 “소모적 논쟁과 감정적 대립으로 맞서기보다는 모든 것을 법적 절차를 통해 명확히 밝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가뜩이나 미중 무역분쟁과 같은 대외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 간 소송이 벌어진 데 대해 난감해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확인해줄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지만 양측 관계자들을 만나 원만한 합의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미국 법원에 SK이노베이션의 특허 침해 혐의와 관련한 서류를 제출할 경우 관련 기술이 해외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13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 유출과 관련한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 간 분쟁을 조정한 사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도 양측의 화해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LG화학 측이 이번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한 점과 그룹 차원에서 사활을 건 신성장 사업 관련 소송이라는 점에서 디스플레이 소송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LG화학 측이 미국에서 제기한 ITC 소송은 내년 6월께 예비판결, 11월께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이 승소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시장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며 SK이노베이션이 승소할 경우 LG화학이 떠안을 직간접적인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글로벌 최대 배터리 생산업체인 중국의 CATL과 일본의 도요타가 최근 전기차 생산을 위해 손을 맞잡는 등 글로벌 공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업체 간 분쟁이 해외 업체들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