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마스트리히트 조약




2009년 그리스 정부의 재정상황을 점검하던 유럽위원회 심사단은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스의 재정적자가 공식 발표된 수치에 비해 훨씬 많을뿐더러 정부 차원에서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 정도라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13%에 달했다. 국가부채는 GDP의 113%에 이를 정도였다. 선거를 앞두고 정책 실패에 대한 추궁을 우려한 정부가 진실을 숨겨온 것이다. 유럽위원회는 2010년 벽두에 이런 사실을 폭로했고 결국 재정위기로 이어지고 말았다.


1992년 2월 네덜란드의 소도시 마스트리히트에 유럽 12개국 정상들이 모였다. 이들은 유럽경제통화연맹(EMU) 참여를 희망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경제수렴 기준 네 가지를 제시하면서 유로화가 탄생할 1999년까지 이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는 연간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3% 이내여야 하며 정부 부채는 GDP의 60%를 초과해선 안 된다는 조건이 포함됐다. 당시 유럽연합(EU) 가입국들의 채무비율이 60%를 약간 웃돌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해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의도였다. 아울러 연간 물가상승률이 역내에서 가장 낮은 3개국의 평균 수준을 1.5% 포인트 이상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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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트리히트 조약은 중앙은행 창설과 노동·사회계약조건 통일 등을 담아 오늘날 EU 구성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최종 서명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덴마크는 국가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국민투표에서 부결됐고 아일랜드 국민들도 수정조약을 거부하고 말았다. 이들 국가는 기나긴 협상을 통해 EU의 양보를 이끌어냈고 두 차례의 국민투표를 치러야 했다. 오늘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의 원조인 셈이다.

EU가 재정규칙을 지키지 않고 방만한 지출정책을 고수하는 이탈리아를 제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소식이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공공부채가 GDP의 132%에 달해 권고기준의 2배나 된다는 이유에서다. 외신들은 최대 35억유로의 벌금까지 공공연히 거론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사례는 재정확대라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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