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주식거래에서 연간 거래비용만 수천억원을 낭비해온 것은 그만큼 최적의 매매 단가에 무관심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 등 기관들은 대량 거래를 수반하는 만큼 약간의 매매 단가 차이에 따라서도 크게 이득을 보거나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즉 기관들이 주식 매수 시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에 사고, 매도 시 높은 가격에 팔아야 최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지만 매년 수천억원을 날렸다는 것은 관습적으로 그런 노력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가 국내 기관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기보다는 증권거래 체계에 경쟁이 도입되지 않아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단순히 무지를 원인으로 돌리기에는 손실이 큰 만큼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점의 근본 원인을 ‘거래 체계’의 차이 때문으로 본다. 한국의 주식거래 체계가 독점 구조여서 투자자에게 가장 유리한 가격으로 거래가 체결되도록 하는 ‘최선집행의무’에 둔감해도 문제가 없었던 탓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은 주식거래가 특정 거래소 한 곳이 아닌 여러 거래소에서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주식 1,000주를 매수할 경우 A 거래소에서 700주, B 거래소에서 300주를 매수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주식 1,000주를 한국거래소 한 곳에서만 사들이면 되는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른 것이다. 이러다 보니 거래별로 수수료 등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지난 1990년대부터 활발해졌고 정규 거래소가 아닌 대체거래소(ATS), 또 기관투자가 간 거래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브로커인 다자간매매체결회사가 발달했다.
대체 거래소는 정식 거래소는 아니지만 매매 당사자 사이에서 거래를 체결하는 거래소의 기능을 한다. 투자자로서는 같은 주식을 거래소와 ATS 양쪽에서 모두 거래할 수 있다면 비용이 더 낮고, 거래 체결 시간이 짧으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을 선택할 수 있다.
실제 2005년 미국 캔자스에 설립된 대체 거래소인 BATS(Better Alternative Trading System)는 그동안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NASDAQ)이 과점해온 미국 주식시장에 경쟁과 혁신을 불러왔다는 평가가 많다. 이미 2015년 ‘월가’의 상징인 NYSE에서 거래되는 주식 비중은 23.8%, 나스닥은 17.9%에 불과하다. 그 사이 BATS는 설립 10년 만에 점유율을 21.2%까지 끌어올렸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증권거래소는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기술기업으로의 진화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최근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국내 최초로 제재 여부를 논의 중인 미국 시타델증권의 고빈도매매(HFT) 역시 매매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거래 기법이다. 경쟁적 거래 체계와 거래비용 최소화의 움직임은 최근 국내에서도 비중을 높여가는 알고리즘 매매와 고빈도 매매의 진화로 이어지고 있다. 장근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장충격비용을 최소화하고 시세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 알고리즘 매매”라며 “이를 1,000분의 1초 단위로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컴퓨터에 의해 거래가 이뤄지도록 발전한 것이 고빈도 매매”라고 설명했다. 거래 체계에 대한 고민 없이는 이 같은 선진 거래 기법으로 무장한 외국인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래 체계에 대한 경쟁 도입은 금융투자업계에 새로운 먹거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남길남 자본연 연구위원은 “전통적 수익 부문의 침체로 증권사들의 비용 절감 압박은 매매 체결 비용의 감축 시도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주문의 내부 체결을 모색하거나 별도의 ATS 설립 유인이 커질 수 있다”며 “대안적 모델로 미국과 유럽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대형 거래소 그룹의 자회사로 ATS를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양준·김광수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