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복지국가'에서 '복지사회'로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동아대 석좌교수

정부 주도형 복지국가 모델

재정 팽창 등 효율성 떨어져

민간 협치 '복지사회' 전환을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복지국가(welfare state)’는 윈스턴 처칠 총리가 전쟁으로 어려움에 처한 영국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내건 정치 슬로건이었다. 처칠은 나치 독일을 ‘전쟁국가(war state)’로 지칭하고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 영국을 ‘복지국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1942년 세계 최초의 복지국가 청사진인 ‘베버리지보고서’를 발표했다.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고 장기간 경제호황이 지속 되자 유럽 선진국들은 서로 복지국가를 만들려는 경쟁에 돌입했다.

그 결과 복지 수준은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됐으나 복지재정의 팽창으로 ‘큰 정부’와 이에 따른 비효율이 새로운 도전과제로 등장했다. 복지국가와 큰 정부에 대한 반작용으로 1980년대 이른바 ‘신(新)자유주의’가 부상하면서 복지 분야에서 민간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됐다. 예를 들어 영국의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는 총리실에 ‘제3섹터청’을 신설하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사회금융시장의 활성화를 통한 혁신적 민간복지활동을 지원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정부 중심의 복지국가를 시민사회와 기업 등이 두루 참여하는 ‘복지사회’로 개편하려는 노력은 미국·호주 등 자유주의적 복지국가는 물론 독일·프랑스 등 보수주의적 복지국가와 스웨덴·덴마크 등 사회민주적 복지국가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사회복지의 사회혁신적 측면이 부각되면서 사회혁신의 주체로서 사회적 기업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금융의 활성화는 물론 정보기술(IT) 등 기술혁신을 복지분야에 접목시키려는 시도 역시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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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문에 이어 사회복지 부문에서도 ‘일본의 길’을 선택한 한국은 경제발전 수준에 상응하는 사회복지 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1998년 사회권에 근거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시했고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을 계기로 각종 사회보험제도가 완성 단계로 들어섰다. 사회서비스 분야 역시 1989년부터 정부 차원의 지원이 강화됨으로써 ‘경쟁력을 갖춘 서비스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한국·대만이 주축이 된 ‘동아시아형’ 복지국가는 사회보험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보수주의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정부 못지않게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자유주의형’을 가미한 혼합형 복지국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형 복지국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경제발전이 복지발전을 선도했다는 점이다. 이는 불균형 발전이라는 비판도 있으나 경제발전으로 인해 복지발전에 필요한 재원을 용이하게 마련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복지국가 위기’를 경험한 유럽국가와는 달리 동아시아형 복지국가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물론 2008년 세계금융위기 과정에서도 복지사업을 꾸준히 확대할 수 있었다.

복지국가의 성격은 인위적인 정책 설계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한 나라의 역사적·정치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여건이 빚어낸 산물이다. 따라서 이제 한국형 복지국가를 그리는데 있어서도 기존 동아시아형에 새로운 요소를 혼합하는 모습이 돼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형은 복지와 경제가 상호보완적이고, 정부와 민간 부문이 파트너십을 형성해 역할을 분담하기 때문에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복지국가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경제는 철저히 시장원리에 의해 운영하고, 정부는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역할 분담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는 복지국가의 본보기인 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복지 분야에서도 기업을 포함한 민간의 참여를 장려함으로써 복지재정의 부담을 줄이는 한편 사회혁신을 통해 복지사업의 사회적 성과를 극대화하는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만 강조하는 복지국가에서 정부와 민간의 협치에 기반한 ‘복지사회’로 우리의 인식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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