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군산 가는 길

김윤식 신협중앙회장




지난달 28일 군산 가던 날 아침, A4용지 3장짜리 에세이 1편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신협 50주년 수기 공모에 뽑힌 군산대건신협 서정원 조합원의 글이었다. 이 글은 볼 때마다 신협의 소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신협과 인연을 맺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아버지가 신협 가입을 권했다. 집이 가난해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 번 돈을 꼬박꼬박 신협에 저축했다. 거의 매일 얼굴도장을 찍자 신협 직원들과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세월이 흘러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군산 살던 손위 형님이 문구점을 개업했는데 도와달라는 기별이 왔다. 그 길로 군산으로 갔다. 형님이 결혼하면서 독립했다. 형님이 독립자금으로 400만원을 줬지만, 점포를 마련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때 부족한 자금을 신협이 해결해줬다. ‘군산문구’는 그렇게 탄생했다. 신협이 홍보도 해줘 창업 2년 만에 터를 잡았다. 결혼도 하고 아들, 딸도 낳았다. 결혼 10년 만에 아파트도 장만했다. 서정원 씨는 “무척 감격스러웠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곧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외환위기가 터졌다. 빚은 쌓여 갔고 존폐위기에 놓였다. 더 많은 걸 잃기 전에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거꾸로 생각했다. 남들 줄이고 폐업할 때 전문 대형문구점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이때도 신협이 도와줬다.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다. 사업장은 커졌고 신경 쓸 일은 3배로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위암 판정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투병도 고통이었지만 경제적 고통이 더 심했다. 이 난관 또한 신협 덕에 넘어섰다. 치료비며 생활안전자금을 지원해줘 엄청난 자금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협과 가족 덕분에 위암이 완치됐다. 서정원 씨는 말한다. “신협은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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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다 보니 어느새 군산에 다다랐다. 정부는 지난해 군산, 거제 등 여섯 곳을 ‘고용·산업위기 대응지역’으로 선포했다. 서민금융을 표방하는 신협의 기본업무는 ‘어렵다는 현장으로 달려가 어렵다는 서민들을 만나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대규모 실직과 폐업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신협의 소명이다. 위기에 처한 수많은 ‘서정원 씨’에게 희망을 줘야 했다.

현장에서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위기지역 군산, 거제 두 곳 주민들에게 긴급 생계자금 1,000억원 대출을 약속했다. 무담보·무이자로 1인당 최고 1,000만원까지 가능하다. 또 두 지역 대학생·고등학생 120명에게 총 3억원의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22일 현재 군산지역 학생 48명이 1억 4,000만원을, 거제지역 학생 61명이 1억 8,000만원의 혜택을 봤다. 신협중앙회장으로서 서민이 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되는 데 밀알이 되겠다는 다짐, 또 한 번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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