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영악한 아베의 '원교근공'

서정명 경제부장

아베의 치밀한 '경제정한론' 흑심

국력 한곳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민정수석 '친일프레임' 분란 자초

'불화수소'는 한일 '경제不和' 서곡

규제풀고 신기술 개발 지원나서야

서정명 부장



일본의 ‘경제 정한론(征韓論)’이 거침없다. 꽃잎을 내리치는 사무라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예리하다. 부품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를 단행했을 뿐인데 우리 정부와 대기업은 ‘앗 뜨거워’ 하며 야단법석이다. 한일 역사갈등을 외교마찰·경제전쟁으로 끌고 가면서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아베 신조 총리의 흑심(黑心)을 미리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참의원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연립정권이 개헌 동력은 얻지 못했지만 전체 의석의 과반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다. 우리 정부로서는 첩첩산중이다. 아베 총리는 한국을 겨냥한 경제보복 수위를 더 높이면서 한일갈등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것이고 동북아 질서에서도 주도권을 더욱 움켜쥐려고 할 것이다.

그가 취하는 전략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2,300여년 전 중국 전국시대 때 종횡론을 주창했던 범수(范睡)가 창안한 수법을 조자룡 칼 다루듯 능수능란하게 휘두른다. 범수는 진(秦)나라 소양왕에게 영토가 멀리 떨어져 있는 제(濟)와 초(楚)를 공략하는 것은 부담이 큰 만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위(魏)와 한(韓)을 먼저 쳐야 한다고 다그쳤다. 원교근공 책략은 진나라가 전국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천하를 통일하는 기본 이념이 됐다.


아베 총리는 영악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당하면서까지 미국에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언제든지 만나자며 뜨거운 러브콜을 보낸다. 대신 공격 타깃으로 삼은 것이 한국이다. 북한 핵 위협을 구실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기술 추격에는 경제보복의 칼날을 들이댄다. 일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적절한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추가 보복까지 경고할 정도로 오만방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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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의 허술한 대응이다. 국란(國亂)에도 민정수석의 입은 너무 가볍다. 국력을 한곳으로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친일 프레임으로 분란을 자초하고 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부정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친일파로 불러야 한다.” 민심을 경청하며 다독여야 할 민정수석이 오히려 한국사회를 친일 이분법으로 동강 내고 있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경기도 관찰사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그대는 서생이니 전쟁터에 나서는 것은 결코 그대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양주 목사가 전쟁에 능하니 그대는 단지 군사를 모아 그가 지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충분히 공을 세우는 것이다. 부디 직접 군대를 지휘하려고 하지 마시라.”

한일 갈등은 고스란히 기업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핵심소재에 이어 앞으로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 1,100개 품목이 타격을 받게 된다. 난국에 기업들을 불러 반짝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평소에 기업들이 연구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필요한 부분은 지원해야 한다. 부품소재 경쟁력이 낮은 것이 대기업에서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기업에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시장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불화수소’ 수출규제는 한일 간 ‘경제 불화(不和)’의 전초전이다. 장기집권을 꾀하는 아베 정권은 국내 정치용으로 또는 한일 간 외교갈등이 노정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 들 것이다. 막상 일이 터져 우왕좌왕하는 아마추어는 더 이상 안 된다. 유성룡은 일본이 가장 두려워한 무기를 비격진천뢰라고 소개했다. 600보까지 날아가 화약이 폭발하는 예전에 없던 신무기다. 우리 기업들이 현대판 비격진천뢰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일본을 이긴다. 1910년 경술국치를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매천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후세에 교훈을 던진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뒤에 남이 치느리라(國必自伐以後人伐之).”

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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