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자녀 성장기엔 부모가 무한 신뢰해 주세요"

가족상담전문가 권수영 연세대 신과대학장

가족 구성원 연대감 유지 위해

심리적 독립·상호 인정이 중요

남편·아버지 자리 주장하면서

복종 강요하면 갈등만 커져

평등하게 권리 누리고 신뢰를




“회사에서는 말 잘 듣는 토끼 같은 과장님이 집에서는 무서운 호랑이로 돌변한다면 업무 스트레스를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내 아내, 내 자식이니까 나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가족과 단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상담 전문가인 권수영(사진) 연세대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은 최근 서울경제와 만나 “남편 혹은 아버지의 자리를 주장하면서 복종을 강요한다면 가족구성원 간 보이지 않는 벽은 높아지게 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월 출간한 <퇴근 길인문학 수업 - 관계(한빛비즈 펴냄)>의 필진으로 ‘똑똑한 사람들이 가족에게는 왜 그럴까’를 쓴 권 교수는 가족구성원 간에 끈끈한 유대감을 유지하기 위한 선행요건으로 ‘분화(differentiation)’를 제시했다. 분화란 세포가 분열 증식해 성장하는 동안 서로 구조나 기능이 특수화하는 현상으로 상담학에서는 심리적인 독립과 상호 인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문용어다. 그는 “분화가 잘된 가정이라면 대화를 할 때 각자 자신의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며 “떨어져 있어도 불안하지 않기 때문에 자녀의 일상에 대한 부모의 간섭이 비교적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안정적인 분화를 위해서는 자녀의 성장기에 부모의 무한 신뢰가 필요하다는 게 권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분화가 잘된 자녀는 부모에게 거절을 당하지 않았던 유년기의 경험이 축적돼 있다. 이를테면 공부를 못해도 버림받지 않는다는 믿음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면서 “대체로 부모들의 불안은 자녀들이 공부를 못해서라기보다 공부 못하는 자녀로 인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이 앞서기에 자신의 모습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관계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관계라고 말하는 권 교수는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무조건적인 보호를 받는 안식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권리를 누리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분화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베이비붐 세대인 부모는 극단적인 가족 이기주의에 익숙해 남녀 간 평등에도 익숙하지 않다. 집안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능력보다 남자 우선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베이비붐 세대의 부부간 갈등은 여성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전통적인 가족관계에 대한 인식 탓”이라고 진단했다.

권 교수는 이어 우리 사회가 다양화됨에 따라 순혈주의 가족만 정답이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외에 1인 가구, 다문화, 조손 등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형태의 가족들을 우리 사회가 포용하고 서로 연대하고 연결할 수 있다면 사회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이어 “만약 자녀 문제로 고통받거나 남편 혹은 아내 때문에 불안하다면 그 원인은 상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면서 “스스로 불안감에서 벗어나야만 상대방이 제대로 보인다. 왜 불안한지에 대해 스스로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수순”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india@sedaily.com

장선화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