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통화정책의 유연성과 시의성

조장옥 서강대 교수·경제학

정부 가격개입·日보복 등 '패닉'

현재 통화정책 최우선 과제는

'경기부양' 보다 '시장작동' 돼야




주지하다시피 거시경제정책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나뉜다. 재정정책은 정부 구매나 조세를 조정하는 정책이고 통화정책은 통화량 증감을 통해 이자율을 조정하는 정책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은 팽창적인 거시경제정책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지속했다. 그러나 위기 이후에도 재정정책보다는 통화정책을 거시경제 안정화의 주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추세인 것 같다.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은 7,000억달러 이상의 재정을 풀었지만 대부분 부실화된 금융기관을 인수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경제 안정화에 크게 효과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정부부채의 누증 때문에 팽창적인 재정정책은 항상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금융위기에 대처한 주된 정책은 통화정책이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정책이자율인 연방기금금리를 0%까지 신속하게 낮췄다. 세계금융위기가 시작된 2007년 9월 중순까지 미국은 기준금리를 5.25%로 높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부동산시장이 과열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달 18일 연준은 기준금리를 4.75%로 0.5%포인트나 인하한 다음 2008년 12월에는 0%까지 내렸다. 그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내린 경우는 여러 번이다. 2008년 1월에는 22일 4.25%에서 3.50%로 0.75%포인트 인하한 후 30일 3.0%로 낮췄다. 열흘도 안 돼 기준금리를 1.25%포인트나 인하한 것이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보여주는 정책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하는 무엇을 겨냥한 것일까. 참고로 한국은행법은 통화정책을 통해 우리 중앙은행이 추구해야 할 목표로 물가 안정과 금융안정 두 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의 중앙은행법에 규정된 목표는 이 두 가지뿐만 아니라 완전고용과 경제성장 등 다양하다. 따라서 통화정책의 목표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한국은행보다 연준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전후 사정을 미뤄 짐작건대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국 통화정책의 목표가 경기부양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보다는 소재가 불분명한 서브프라임 주택 대출의 위험과 불확실성에 따른 신용경색 때문에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장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0%까지 빠르게 인하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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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은 통화정책에서 완전고용이나 경제성장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경우도 그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노동시간 강제 단축, 비정규직의 무조건적 정규직화, 법인세 인상, 법으로 제어되지 않는 노동조합, 대기업 때리기 등 거듭된 정책 실패와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소재 수출규제 같은 대외 충격으로 시장은 거의 패닉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가격이 잘 작동해야 재화와 생산요소가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그러나 정부의 시장과 가격개입은 이미 구제불능에 가깝다.

만시지탄이나 지난주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아쉬운 것은 마치 경기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인 것처럼 보도자료를 내고 있음이다. 이는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전후에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가 정책효과 둔화이다. 통화정책의 경기부양 효과를 과신하지 말 것을 충고하고 싶다. 지금 통화정책의 최우선과제는 시장의 작동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충분한 유동성 공급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만큼 통화정책의 유연성과 시의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시장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정책은 늘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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