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한미일 동맹 느슨해지자...중러, 우리 영공서 계획된 무력시위

[러 군용기 독도 영공 침범]

'사상초유' 중·러 군용기 합동 韓방공식별구역 진입 파장

軍 경계서 대처까지 대응 적절했지만 외교·안보 부담으로

"지역동맹 당위성 방증 사건" 美, 韓에 대일 양보 압력 우려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가 23일 오전 한국 영공과 카디즈를 무단 침범한 것과 관련해 막심 볼코프(위) 주한 러시아대사대리와 추궈훙(아래) 주한 중국대사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로 초치되고 있다.      /연합뉴스러시아와 중국 군용기가 23일 오전 한국 영공과 카디즈를 무단 침범한 것과 관련해 막심 볼코프(위) 주한 러시아대사대리와 추궈훙(아래) 주한 중국대사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로 초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일이 23일 오전 한꺼번에 터졌다. 첫째는 러시아 공군의 한국 영공 침범, 둘째는 이에 대응한 한국 공군의 경고용 실탄사격이다. 세 번째는 중국과 러시아 공군이 합류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을 비행했다는 사실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전술적으로 이날 우리 군은 완벽한 대응태세를 과시했다. 오랜만에 경계에서 대처까지 흠잡을 데 없이 대응했다. 문제는 보다 넓은 차원에서 보면 한국의 지정학적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한일 경제갈등을 중재하는 미국의 입장에도 이날 사건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의 입지가 더욱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별개 3개 비행으로 시작=우리 공군을 대응하게 만든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는 모두 5대. 중국 H-6 폭격기 두 대와 러시아 TU-95 폭격기 두 대, 러시아 A-50 조기경보기 한 대가 처음에는 각각 따로 비행했다. 우리 군 레이더에 가장 먼저 포착된 것은 중국 폭격기. 오전6시44분께 중국 폭격기 두 대가 이어도 북서방에서 카디즈로 들어와 이어도 동방으로 이탈했다가 동해 카디즈에 나타난 뒤 다시 빠져나갔다. 중국 군용기들이 이 대목까지 카디즈를 비행한 시간은 약 한 시간. 남해 상공에서 30분, 동해 상공에서 31분을 날았다. 중국 군용기들의 카디즈 침범은 이로써 올 들어 스물다섯 번째를 기록했다. 바꿔 말하면 일상화됐다는 얘기다. 중국은 간혹 우리 공군의 경고방송에 대해 “국제법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비행을 실시하고 있다”고 답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까지는 평소 상황 그대로 전개됐다. 이상 징후는 이후부터 연달아 발생했다.


◇사상 초유 ‘중러 합동 카디즈 비행’=중국 군용기는 평상시대로라면 러시아 인근까지 비행한 뒤 똑같은 귀항 경로를 밟는다. 그런데 중국 군용기는 오전8시33분께 동해 북방한계선(NLL) 북방에서 러시아 폭격기 두 대와 합류해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두 나라의 폭격기가 합류한 것도 이례적이거니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함께 통과한 것도 사상 처음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언론보도문을 통해 “러시아 공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이 장거리 군용기를 이용해 아시아태평양 해역에서 첫 번째 연합 공중 초계비행을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임무 수행과정에서 양국 공군기들은 관련 국제법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며 “객관적 자료에 따르면 외국 영공 침범은 허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타스 통신은 러시아 정부가 중국과의 군사협력 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추진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최초의 영공 침범, 우리 군 대응 경고사격=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4대의 편대비행에 우리 군의 촉각이 곤두서던 오전9시9분께 전혀 다른 러시아 A-50 조기경보기 한 대가 독도 부근 영공을 침범했다. 비상 발진해 대기 중이던 우리 공군 KF-16 전투기의 즉각적인 경고방송에도 러시아 군용기가 반응하지 않자 우리 군은 섬광효과가 큰 플레어(섬광탄)와 함께 실탄 경고사격을 개시했다. 러시아 A-50 조기경보기는 이에 일단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우리 공군이 같은 절차를 거쳐 다시 실탄을 쏘자 러시아 군용기는 영공을 바로 벗어났다. 지난 1988년 9월 소련 폭격기가 독도 상공을 침범했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제3국의 군용기가 영공을 침범한 것은 공식적으로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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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셈이 됐다”며 “일본과 미국 등 해양세력의 팽창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의 대륙세력이 견제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우리를 견제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미국 군사행동에 반하는 성격의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교안보 측면 악재 작용할 가능성=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을 자극하거나 무시하며 합동훈련을 실시했다는 점은 크게 볼 때 악재가 분명하다. 중국·러시아의 연합과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미국이 삼각 안보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미국과 일본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화하자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맞서면서 한반도가 미일과 중러 간 무력시위 공간으로 전환되는 등 동북아시아 안보질서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동아시아 안보질서에 나타나고 있다”며 “군사·안보 측면뿐 아니라 정치·경제·외교 전방위에서 동아시아 질서의 새판이 짜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의원은 “최근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으로 전환됐다”며 “일본을 자극하기보다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시키는 미국에 대한 견제의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절묘한 타이밍…볼턴 방한=주목할 대목은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한국 방문과 절묘하게 시간이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방한을 앞둔 볼턴이 일본을 먼저 들러 일방적인 얘기를 들을까 우려하는 마당에 평소 지역안보동맹의 당위성을 방증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해 한국이 양보를 강요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경제마찰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호르무즈해협 파병 등에서 한국을 압박할 미국의 카드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우리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 있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고 미국과의 협력구도는 강화하는 방안이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보다 과감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왔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일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되면서 한미일 대응태세의 허점을 노린 것으로 본다”며 “평소 하고 싶었던 군사훈련의 적기로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신 센터장은 “재발 가능성에 대해 예의 주시해야 한다”며 “차단 기동 및 경고사격 등의 대응으로 나름 초기대응을 적절히 했지만 나포까지 고려한 초강수로 재발 가능성을 차단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송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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