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톈안먼 강경 진압' 리펑 전 中 총리 사망

'톈안먼 학살자' 꼬리표와 달리

中 내부서는 진압 공로 인정받아

'장수 권력' 누리며 승승장구

한중 수교 첫 방한 총리 인연도

AP연합뉴스



지난 1989년 6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한 리펑(사진) 전 중국 총리가 22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그는 외부에서는 ‘6·4 톈안먼 학살자’라는 악명을 얻었지만 중국 내에서는 공로를 인정받아 총리에 이어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한국의 국회의장)도 맡는 등 ‘장수 권력’을 누렸다.

23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리펑 전 총리가 22일 저녁 11시11분에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2008년부터 건강이 악화한 리 전 총리는 최근 몇 년간 수차례 사망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날 신화통신은 “중국 공산당은 우수한 당원이자 걸출한 무산계급 혁명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를 잃었다”고 전했다.


리 전 총리가 국제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국무원 총리로 있던 1989년 톈안먼 시위에 강경 진압을 주장하며 관철시키면서다. 당시 명목상의 최고 직위에 있던 자오쯔양 총서기는 시위 중인 학생들과의 대화를 주장한 반면 리 전 총리는 인민해방군을 동원한 강제진압을 요구했고 결국 실질적인 최고권력자 덩샤오핑의 승인을 얻었다. 그해 6월3일부터 4일 새벽까지 탱크까지 동원한 무력진압으로 수천명의 시민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고 결국 민주화시위는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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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태로 인해 자오 총서기는 곧바로 실각했고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2005년 사망했다. 반대로 리 전 총리는 승승장구하며 1998년 총리를 계속했고 이후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옮겨 2003년까지 역임했다. 역대로 중국의 권력 3인방 가운데 국가주석 외에 총리와 전인대 상무위원장 두 자리를 모두 맡은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1928년 10월 상하이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양친 모두 중국 혁명가로 태자당으로 분류된다. 부친인 리숴쉰은 저우언라이·주더 등과 함께 1927년 난창 봉기를 주도했는데 이후 국민당에 체포돼 처형됐다. 저우언라이가 고아가 된 그를 양자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리 전 총리는 2014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저우언라이와 자신의 관계를 ‘원로 동지와 혁명열사 자녀의 관계’라고 밝혔다. 1945년 17세에 공산당에 가입해 러시아에서 유학했고 귀국 후 에너지 관련 정부부처에서 일하며 전력공업부장 등도 지냈다. 리 전 총리에 이어 그의 자녀들도 승승장구했다. 리 전 총리가 에너지 전문가였던 탓에 자녀들도 에너지 분야에서 태자당을 형성했다. 딸 리샤오린은 중국의 ‘전력여왕’으로 불리며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회장을 지냈고, 아들 리샤오펑도 중국의 5대 전력회사인 화넝그룹 이사장으로 일하다 현재 교통운수부장으로 있다. 한편 리 전 총리는 1992년 한중수교에 큰 역할을 하는 등 한국과 인연도 있다. 앞서 1991년 5월에 북한을 방문해 중국이 앞으로 “두 개의 코리아 정책을 펴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전정지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10월 중국 권력 3인방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하기도 했다./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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