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정부, 中企 기초연구·원재료 지원 맡고...대기업은 응용개발 단계서 참여 바람직

산업 체질 개선 어떻게

현금살포 방식 더 이상 안통해

대중기 정교한 역할 설정 필요




일본이 규제한 반도체 소재 수출은 허약한 국내 산업의 생태계를 시험대에 올렸다. 대기업들이 고속성장을 주도했지만 부품·장비·소재 조달은 일본·미국·독일 등에 의존하면서 국내 후방산업의 발전이 더뎠기 때문이다. 240억달러(약 29조688억원)에 달하는 지난해 대일 무역적자는 일본 후방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보여준다.

문제는 단시간에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부품·소재 기술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의 산업 경쟁력은 오랜 시간 기초과학에 공을 들여 축적한 원천기술에서 비롯됐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벨상 수상자가 20여명에 달하는 일본에서는 장인정신을 가진 중소기업 직원도 노벨화학상을 받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될성부른 떡잎’이 있어도 대기업이 빼앗아버리지 않느냐는 불만을 토로한다. 기술자료나 특허 공동출원 요구를 통해 유망한 기술을 탈취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 단가 낮추기 목적으로만 기술과제 발굴에서 평가까지 독차지하는데 어떻게 원천기술을 확보하겠느냐”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반면 대기업은 ‘상생’이라는 명목으로 책임만을 강요받는다는 입장이다.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섣불리 테스트했다가는 수백억원을 날릴 수 있는데도 업계 안팎에서 ‘대기업이 국산 소재·부품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기계·고부가섬유 등의 업종도 비슷한 처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부 중소기업에서는 현금살포 복지와 같은 자금 지원만 바란다”면서 “상생 차원에서 개발자금을 지원했는데 엉뚱한 곳에 쓰이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개발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산업 체질 개선이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기초연구 지원과 원재료 확보를 맡고, 대기업은 응용개발 단계부터 참여하는 식의 정교한 역할 설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 중견 소재업체 대표는 “중견기업은 5년, 10년 뒤를 내다보고 개발에 뛰어들 수 없다”며 “일본의 물질연구소처럼 정부 주도의 소재개발 로드맵과 상품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삼미술)’과 같은 산학 연계 모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삼미술은 불확실성이 높지만 성공할 경우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최근에는 삼미술의 지원을 받은 김경록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연구팀이 반도체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3진법 기술을 세계 최초로 대면적 웨이퍼에 구현하기도 했다.


박효정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