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금융가

투자자 책임·내부통제·지배구조 등 20년전 '구멍난 시스템' 여전

['후진적 금융' 변한게 없다]

은행 상품 선정프로세스 제대로 가동안돼

투자자는 손실나면 책임안지고 "보상해 달라"

DGB금융 등 불투명한 경영구조로 신뢰약화

금융당국도 보신주의에 '그림자 규제' 되풀이




독일 금리 연계 파생상품을 편입한 파생결합펀드(DLF)가 대규모 손실 우려에 직면하면서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은행이나 투자하는 투자자들, 그리고 금융당국의 보신주의 행태 등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 많이 봐 오던 사태를 보는 듯한 기시감마저 든다.

DLF 원금손실 우려는 은행이 기존에 팔아오던 상품이라 아무 생각 없이 지속적으로 고객에 권해오다 예상치 못한 외부 급변상황에 손실을 보자 불거졌다. 은행 내부에서는 지금까지 잘 팔아왔는데 손실 사태를 맞자 ‘운이 나빴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문제가 된 일부 은행에서는 팔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팔았던 것을 문제 삼느냐는 반발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인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고객 성향에 맞지 않는다며 오래전부터 DLF 관련 상품을 팔지 않았지만 국내 은행들은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며 판매를 강행해 오다 화를 자초했다.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고객의 투자 성향을 면밀히 분석해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상품은 절대 권하지 않는다”며 “선진 금융회사의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이와 비교하면 국내 은행은 여전히 후진적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금융상품을 팔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더구나 올해 초부터 글로벌 금리 움직임이 변곡점을 맞았지만 금리 변화에 따른 위험성이 내재된 금융상품을 파는 은행도, 이를 지켜보는 금융당국도 전혀 비상벨을 울리지 않았다. 과거 IMF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가 됐다.

손병두(왼쪽 두번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증권시장 상황점검을 위한 금융투자 업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 안에 대규모 원금 손실 우려가 발생한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에 대한 합동검사에 나서기로 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손병두(왼쪽 두번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증권시장 상황점검을 위한 금융투자 업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 안에 대규모 원금 손실 우려가 발생한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에 대한 합동검사에 나서기로 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


11년 전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키코에 가입했던 기업들 역시 예상치 못한 환율 폭등으로 대규모 손실을 입었는데 이번에도 외부 변수에 취약해진 것이다. 당시에도 금융권 내에서 나온 목소리는 은행들이 과연 해당 상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팔았느냐는 것이었는데 비슷한 사태가 반복되면서 은행은 은행대로 신뢰를 잃고 투자자들은 투자자대로 소송의 고통을 겪게 됐다.


일부에서는 자문 수수료를 별도로 내는 해외 은행들과 달리 국내 은행 PB들은 판매 실적이나 고객 수익률 제고 등의 핵심성과지표(KPI) 달성을 통해 성과급을 받는 구조다 보니 위험상품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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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판매 과정의 문제뿐만 아니라 은행의 고질적인 이익구조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4대 금융그룹의 전체 이익 가운데 은행 이자수익(예대마진)은 80% 정도로 압도적이다. 동남아나 유럽시장 등에 진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예대마진에 의존한 영업구조는 잘 바뀌지 않고 있다.

기술금융도 제자리걸음이다. 정부가 압박해 마지못해 지난 6월까지 1조원 규모로 늘렸지만 제대로 된 심사를 할 인력이 없어 부실 가능성이 벌써 나온다. 시장을 키우기 위한 마중물로 볼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은행의 출혈이 크다.

파벌싸움으로 점철된 DGB금융 등 지방금융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내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하락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당국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모펀드 시장 활성화에 올인한 나머지 사모펀드가 해외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처럼 고위험 파생상품을 투자 자산에 편입시켜도 이를 사전에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DLF 사태처럼 은행이 PB를 통해 사모로 고위험 상품을 판매해도 대규모 원금 손실 우려 같은 이슈가 터지지 않는 한 사전에 이를 알아내거나 상시 점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금융권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로 전 세계 금리의 방향이 바뀌면서 이와 연계된 파생상품의 위험성도 높아졌다”며 “하지만 사모펀드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사전에 모니터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금융당국이 규제개선을 외치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보신주의 때문에 또 다른 그림자 규제를 양산하는 것도 후진적 금융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선진국 금융당국은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을 서두르면서 잇따라 핀테크 육성이나 새로운 금융상품 출시에 팔을 걷고 있다. 우리 금융당국은 시늉은 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림자 규제로 덧칠돼 당초 규제 완화 취지를 볼 수 없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대표적으로 특례법까지 만들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인터넷은행 지분 34% 보유를 허용했지만 네이버 등이 규제범벅이라며 제3인터넷은행에 진출하기보다 일본 등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은 대표적인 그림자 규제의 이면이다. /서은영·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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