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전월세 세입자가 원할 경우 계약을 연장해주는 ‘주택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에 이어 재계약 시 임대료 인상폭을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도 패키지로 도입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임대차 시장 규제가 서민 주거안정에는 도움을 줄 수 있어도 전월세 공급 부족과 가격 인상 등 단기적 부작용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 1989년 정부가 주택 임대차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자 서울 주택 전세가는 23%, 전국은 17% 상승한 바 있다. 1990년에도 전국과 서울 주택 전세가가 16% 올랐다. 단기 가격 급등이 일어난 것이다. 한 전문가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예고로 벌써부터 전세시장이 들썩이자 이 같은 카드를 꺼낸 것 같다”며 “상한제 시행에 임대차 규제까지 겹치면 임대료가 크게 오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쏟아지는 주택임대차 규제 =18일 당정은 주택에도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을 법제화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 임대차보호법 개정 절차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당정은 협의를 마치는 대로 세부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은 현행 2년인 전세계약을 4·6년으로 늘리는 내용이 골자다. 전세계약자가 2년 임대계약을 마치고 재계약 의사를 표시하면 임차인은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계약을 연장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이다. 주택임대 기간은 통상 2년 기준이기 때문에 갱신청구권이 보장되면 최소 4년의 임대기간이 보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계약갱신청구권 추진과 더불어 당정이 검토 중인 전월세상한제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된 발의 법안의 상당수는 동시에 전월세상한제 내용도 담고 있다. 향후 법령 개정 과정에서 전월세상한제도 필연적으로 같이 논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월세상한제는 재계약 시 인상률을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일정 수준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다. 현재 논의하는 수준은 갱신 시 인상률이 5% 안팎이다. 여당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는 연계된 제도”라면서 “양쪽 중 하나만 도입하면 취지를 살리기 어려워 양쪽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주택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은 주택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부와 세부 협의를 거치지 않고 해당 법을 소관한다는 이유만으로 법무부 주도로 마련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법무부 소관인 만큼 발표 전 과정에서 우리(국토부)와의 별도 협의는 없었다”며 “이미 의원 발의로 비슷한 법안이 10여개 국회에 계류돼 있고, 1∼2년 전까지는 법무부와 함께 국토부도 관련 제도 도입을 국회에 설명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실제 법령 개정 과정에서는 우리 의견을 낼 것이고, 현재까지는 특별히 도입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외에 전월세신고 의무화도 추진하고 있다. 전월세는 매매와 달리 별다른 의무 조항이 없다. 국토부는 현재 주택임대차 계약 시 30일 이내 집주인 및 중개인이 관련 내용을 신고하는 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한 상태다.
◇상한제까지…부작용 커지나 =당정이 임대시장에 강한 규제책을 도입하는 것은 최근 분양가상한제 도입 예고로 전세가가 계속 오르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전셋값은 7월 첫째 주부터 이달 첫째 주까지 9주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서울 강남과 마포구 일대 아파트는 최근 한 달 만에 전세가가 1억원 이상 오르기도 했다. 이는 서울 인기지역의 전세물량이 부족한데다 분양가상한제 시행 이후 ‘로또 아파트’ 당첨을 위해 주택 매입을 미루는 가구가 많아져서다.
국토부는 전월세 공급 물량이 충분해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임대차 규제가 시행되면 주택임대차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적으로 공급물량 감소와 임대료 급등이 예상된다.
이 같은 이유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은 과거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도입을 논의했지만 지금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때도 논의했지만 당시 국토해양부는 전세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임대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며 반대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에도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했지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오히려 임대료가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져 목표로 하는 약자 보호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임대인에게 별도로 인센티브를 주지 않으면 임대의 매력이 떨어져 신규 임대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며 “특히 서울 등 전월세 수요가 많은 지역은 임대물량 부족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1989년 전세계약 기간을 2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전셋값이 급등했다”며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상한제를 시행하면 이번에도 시행 초기 급등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KB부동산 통계를 보면 과거 임대차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었을 때 주택 전세가가 폭등했다.
시장 불안정과 더불어 재산권 침해 논란과 임대주택의 질적 하락 등도 부작용으로 거론된다. 서 교수는 “임대인에게 한번 맺은 계약을 4~6년까지 이어가자고 하는 것은 자율성을 상당히 침해할 수 있다”며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강동효·하정연기자 kdhy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