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Science&Market] 왜 바이오클러스터인가

첨단 의료환경 대응 위해선

벽 허무는 '중개연구' 필수

대학·연구소·병원·기업 등

역량 결집해 새 희망 찾아야

이병권 KIST 원장이병권 KIST 원장



최근 유력 제약사들의 연이은 임상 실패와 허가 취소 등으로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이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고 오는 2025년까지 연간 4조원 이상의 연구개발(R&D) 투자지원 계획이 추진됨에도 바이오 산업의 선진국 추격은 여전히 더딘 느낌이다.

바이오 산업은 메모리 반도체의 세 배에 이르는 막대한 글로벌 시장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세계적 위상과 영향력은 아직 턱없이 미미하다. 초고령화 시대에 국민건강·복지 수요가 한층 커지는 상황에서 저성장 트랩에서 버둥거리는 우리 경제에 바이오 산업의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그야말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최근 바이오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이구동성으로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기초연구 실험실과 병원이 벽을 허물고 협력하는 중개연구 없이는 오늘날 급변하는 첨단의료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거꾸로 그 원인과 역학관계를 밝히는 ‘역중개연구(reverse translational research)’까지 새로운 기초연구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중개연구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물리학·화학의 발전이 본격화된 19세기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1895년 뢴트겐의 X선, 1898년, 퀴리 부인에게 노벨상을 안긴 라듐의 발견이 없었다면 방사선을 활용한 치료와 진단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기초과학 연구의 산물이 획기적 치료방법으로 적용된 중개연구 성과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중개연구를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돼야 할 조건이 있다. 대학·연구소·병원·기업 등 관련 주체들이 근거리에 모여 역량을 결집하고 서로 역동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혁신 클러스터’ 조성이다. 주요 바이오 선진국들의 민관이 역량을 결집해 세계적인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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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바이오 클러스터인가. 바이오 분야는 차고에서도 성공적 혁신을 만들어내는 다른 산업 분야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인 만큼 혁신을 창출해가는 특성과 구조가 다르다. 평균 신약 전임상 기간 12년, 성공확률 0.02%로 미국에서조차 “We’re existing for failure(우리는 실패를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이 기본일 수밖에 없을 만큼 그 과정이 길고도 지난하다. 개별 주체들의 노력만으로는 이러한 바늘구멍을 뚫을 엄두도 내기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잘 조성된 클러스터로 앞다퉈 몰려가는 추세이다. 국내 기업들도 최근 수많은 바이오 기업, MIT 등 우수 대학과 병원이 밀집한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에서 연일 쏟아지는 새로운 혁신 신약 물질들을 활용하고 수많은 혁신적 대기업 및 스타트업과 협력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정책을 전면적으로 다시 뜯어봐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과는 달리 최고 수준의 병원에서도 연구에만 몰두하는 의사가 10%도 안 될 만큼 병원의 연구기반이 취약하다. 수능 최고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지만 기초연구로 졸업하는 학생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우리 여건에서는 연구소와 대학, 그리고 병원이 함께 역량을 결집하는 시너지가 특히 중요하다. 우수한 대학과 연구소, 병원, 기업지원공간이 밀집된 수도권이 바이오 클러스터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는 글로벌 분업체계 하에서도 핵심·원천기술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바이오 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 ‘Bench to Bedside and Beyond’, 최근 외신에서 새로운 바이오연구 패러다임을 나타내며 즐겨 쓰는 표현이다. 이제 길은 명확하다. 연구에서 임상, 그리고 그 너머로 이어질 패러다임에서 우리만의 혁신체계를 갖춰나갈 때 미래 바이오 코리아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이병권 KIST 원장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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