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일본만 있고 미래는 없는 국산화




이상훈 성장기업부 차장

여태껏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았다. 노파심이 큰데도 말조차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반일 광풍’ 속에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부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국 광풍’으로 반일 광풍이 잦아들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지도 100일이 지났다. 좀 차분해질 때도 된 거 같아 한마디 해야겠다. 바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와 관련한 우려다.


최근 정부는 오는 2024년까지 매년 2조원 넘게 소부장에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등에서 20대 품목은 1년, 80대 품목은 5년 내 공급 안정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대일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를 국산화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다. 다만 꼭 짚고 싶은 게 있다. 지금 대책에서 ‘미래’가 얼마나 고려되고 있는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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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일본이 1등인 분야에 대한 ‘묻지마 투자’는 자원 낭비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가령 고순도 불화수소를 보자. 일본이 세계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경쟁자가 없다시피 한다. 노력하면 우리 기업도 기어이 국산화에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국산화를 한들 원가 경쟁력에서 일본을 앞설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자칫 막대한 자원 투입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다. 발등의 불 끄기에만 급급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산화 대책에 전략적 셈법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기술에 맞춰야 하고 세계시장에서 통할 국산화여야 한다. 책임지기를 꺼리는 관료적 나눠먹기식 예산 배분을 뛰어넘는 선택과 집중에 따른 기업 지원이어야 한다. 끝으로 자유무역에 종언이 울렸다지만 일본 수출규제가 갑작스럽게 해결될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 중 으뜸은 바로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어도 한국산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원가, 성능 개선에 효과가 없는 소재를 애국심에 기대 사용하라는 요구는 피 말리는 경쟁에 나선 우리 기업을 주저앉히는 일이다. 도움되는 소재라면 쓰지 말라 해도 쓴다. △경쟁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 △미래 발전 여력이 큰 분야 △우리의 강점이 발현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전력투구해도 이기기 쉽지 않다. 정치권은 소재 국산화가 마법의 지팡이라도 되는 양 떠받들기 전에 일본과의 갈등 해결에 전력을 다하는 게 순서다. 지금 중국 경제도, 미국 경제도 심상치 않다. 이들에 크게 영향받는 우리 경제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나마 우리 의지가 통하는 게 일본 변수다. 실타래를 풀 수 있다면 소부장 국산화도 제대로 탄력받을 수 있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지 않으려면 나침반부터 고쳐야 한다.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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