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라임쇼크 사모펀드 초긴장]1억만 있으면 적격투자자...자격요건·판매채널 재점검해야

<하> 화 부른 느슨한 제도들

내달 5,000만원으로 더 낮아져

투자자 최대 39만명으로 늘듯

진입규제 인가 → 등록제 바뀌며

부실 운용사 우후죽순으로 난립

은행 판매 비중 높은 것도 문제

투자자 보호장치 마련 등 시급




최근 라임자산운용의 대규모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비롯해 여러 사모펀드에서 잡음이 이어지고 있어 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모펀드 시장이 최근 급성장했으나 투자자 보호 및 운용 부실에 대한 견제장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와 관련한 ‘적격투자자’에 대한 기준을 비롯해 판매 채널과 행태 등 다방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15일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우선 완화 일변도의 사모펀드 투자자격 규제를 재점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규제 완화를 되돌릴 필요는 없지만 현재 수준에서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 야기되고 있는 문제가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모펀드란 49인 이하의 소수로부터 자금을 모아 투자를 집행하는 기구를 뜻한다. 다만 이 소수에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적격투자자만 해당한다. 이른바 ‘선수’들을 위한 무대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공모펀드와는 달리 투자자 보호나 정보 공개에 있어 느슨한 규제를 받는다.

사모펀드가 최근 급성장한 데는 바로 이런 투자자격 완화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 2014년 말 개인투자자들의 사모펀드 투자금액은 10조원에서 2018년 말 23조원으로 두 배 이상 불어났다. 2015년 금융당국이 사모 시장 활성화를 위해 투자자의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적격투자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최소 투자자금 5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문턱을 대폭 낮췄다. 그러다 보니 금융지식 유무나 전체 자산 규모와는 상관없이 ‘1억원’만 있으면 사모펀드에 가입할 수 있게 됐고 은행과 같은 판매회사들은 이를 십분 활용해 사모펀드 판매에 열을 올렸다.


이에 더해 다음달부터는 개인 전문투자자 인정 요건이 추가로 완화될 예정이어서 사모펀드 가입 개인투자자들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에는 금융투자상품 잔액 5억원 이상, 총자산 10억원 이상 보유해야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개인 전문투자자로 등록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금융투자상품 잔액 5,000만원, 주택 제외 순자산 5억원이면 금융회사가 등록할 수 있다. 개인 일반투자자의 경우 사모펀드당 가입 최소 금액이 1억원이지만 개인 전문투자자의 경우 금액제한이 없으며 설명의무 등 투자권유 규제도 받지 않는다. 금융위원회는 개인 전문투자자 요건이 완화되면 현재 수천 명 수준인 개인 전문투자자가 최대 39만명까지 급신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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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같이 ‘가입금액 1억원’ 또는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이라는 사모펀드 진입 투자가의 기준이 적합한지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문사모운용사 대표는 “1억원 이상의 자금을 댄다고 해서 손실을 완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힘들며 사모펀드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모펀드는 원래 복잡한 구조를 보이고 리스크가 높아 전문가 영역에 속하는 분야”라면서 “일반 투자자들이 대거 들어간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고 해외에서 이런 상황은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판매 채널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일반 투자자의 진입을 늘린 배경에 은행이 주 판매처로 자리 잡은 것이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또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판매처로 안전추구형 고객이 많은 은행이 적절한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라임자산운용 펀드의 경우 우리은행에서만 1조139억원 규모로 팔렸다. 이는 판매 비중이 가장 높은 대신증권(1조3,403억원)의 뒤를 잇는 수준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16개 은행의 파생결합펀드(DLF) 판매 계좌도 올해 8월 말 1만2,240개로 2015년 말보다 781.2%나 늘었다.

반면 판매처에 대한 점검보다 판매 행태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즉 어디서 상품을 판매하는지보다 어떻게 파는지 따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대표는 “DLF·메자닌펀드 등과 같은 고위험 상품을 은행에서 파는 것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중요한 것은 투자자에게 위험 수준을 확실하게 인지시켰는지 여부”라고 했다. 그는 이어 “고위험 상품을 팔 때는 잘하면 대박이지만 잘못하면 쪽박을 찰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명확히 알려주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모 운용사들의 난립과 이에 따른 부실한 내부통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금융당국이 전문 사모 운용사 진입규제를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면서 자격이 부실한 운용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시장의 물을 흐렸다는 지적 때문이다. 특히 중소형 운용사의 경우 준법감시 및 내부통제 등 기능은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탠다. 송수영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문 사모 운용사로 진출할 수 있는 기준을 강화하고 진입장벽을 높이는 방안을 점검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사태를 토대로 금융당국이 운용에 대한 규제까지 나서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설명이 많다. 자칫 일괄적인 규제를 내놓아 사모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기본적으로 사적 계약을 기반으로 한 사모펀드를 국가가 일괄 규제할 경우 존립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박 연구위원은 “사모펀드를 국가가 나서서 운용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규제를 늘어놓는 건 사모펀드를 금지하겠다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이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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