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학생간 성폭력' 방치...위험수위 넘었다

피해 급증에도 일부 학교선 "애들 장난" 후속조치 손 놔

교육당국 대책도 효과없어...교사 인식전환 등 우선돼야

지난 6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한 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중학교의 남학생이 휴대폰을 이용해 학교와 학원에서 여학생들을 불법 촬영했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학교 측의 대응 방식이었다. 학교는 청와대 청원을 올린 학생을 추궁했고 다른 학생들도 불러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허위 사실 유포” “법적 책임” 등등을 운운하며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후속 조치보다는 관리 책임을 우려해 사건 축소에 급급한 것이다. 이처럼 학생 간 성폭력 사건이 여전한 가운데 높아지는 피해자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일선 학교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16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초·중·고교 내 성폭력 관련 자치위원회에서 피해자로 분류된 학생 수는 2014년 372명, 2015년 490명, 2016년 610명, 2017년 966명, 지난해 1,251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5년간 학교 내 성폭력 피해학생 수가 세 배 이상 많아진 것이다. 학생 성폭력 자치위원회 심의 건수도 2014년 284건, 2015년 335건, 2016년 385건, 2017년 598건, 지난해 718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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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그동안 학교 내 만연했던 성폭력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피해자들의 문제의식은 커지고 있지만 일부 학교는 ‘아이들 장난’쯤으로 치부하고 방치하는 실정이다. 성폭력 가해자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면서 가해자 처벌에 교사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도 한 요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육당국의 대책은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교원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기르고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2017년 발표한 ‘학교 성폭력 사안 처리 시 유의사항’에 따르면 교직원은 학생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즉시 경찰서 등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하며 이를 알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신고하지 않을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이 조항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어서 의도적으로든 비의도적으로든 학교 내 성폭력을 좌시해온 교사들은 법을 어긴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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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교사마다 성폭력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르다 보니 일부 학교에서는 제대로 된 후속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피해학생의 입장을 이해하는 교사가 있는 반면 “남학생이 장난치다 그럴 수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교사도 존재한다. 신진희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학교 내 성폭력이 묵인되는 이유 중 하나는 교원들의 인식 차이”라면서 “어떤 교사는 특정 행위를 성폭력이라고 판단하지만 다른 어떤 교사는 ‘이 정도는 성폭력이 아니다’라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당국은 학생 간 성폭력을 줄이기 위해 각종 예방책을 시행해왔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스쿨미투’ 관련 긴급대책반을 운영하고 학생과 교직원을 상대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학교 내 성폭력은 줄지 않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2017년 중학교 3학년생 67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43.3%의 학생들이 ‘성교육이 도움되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전문가들은 개인 간 성인지 감수성의 차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생들 간, 교사와 학생 간 성에 대한 인식 차이를 좁혀야 비로소 학생 간 성폭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회에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민감성이 너무 빠른 속도로 커져 아직 교사도, 학생도 그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교육당국과 여러 청소년 관련 기관들·학교·학부모단체들이 같이 힘을 모아 성인지 감수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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