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게리 플레이어, 그리고 KPGA

박민영 문화레저부 차장




최근 ‘살아 있는 골프전설’ 게리 플레이어(84·남아공)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가 누군가. 메이저대회 9승 등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24승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160차례 넘게 우승을 차지한 거목이다. 170㎝의 체구로 아널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와 함께 지난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 말까지 골프계를 호령했으며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작은 거인이다.

이 ‘레전드’는 한국인이라는 말에 대뜸 “미스터 킴” 얘기부터 꺼냈다. 그가 가리킨 김씨는 지난달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대회에서 스윙 도중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누른 갤러리를 향해 손가락 욕을 해 물의를 일으킨 김비오 선수였다. 김비오는 이튿날 무릎을 꿇고 사죄했지만 KPGA 상벌위원회는 자격 정지 3년의 중징계를 내렸고 그의 우승도 빛을 잃었다.


플레이어는 “다른 선수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은 처음”이라고 운을 뗀 뒤 “한국의 협회(KPGA)가 3년 자격 정지라는 벌을 줬는데 그것은 내 66년 프로골프 인생에서 본 최악의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물론 그의 행동은 옳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도 “100명도 넘는 선수들이 손가락으로 욕하는 것을 봤지만 500달러나 1,000달러의 벌금을 냈을 뿐이다. 골프가 인생인 선수에게 3년 자격 정지는 살인이나 다름없고 협회는 그럴 권리가 없다. 재고하기를 간청한다”며 손을 모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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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오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무리 거장이라 해도 동양의, 한국의 정서를 이해한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플레이어의 말에 울림이 있었던 것은 골프에 대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골프에서 매너가 중요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누구나 인생에서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위대한 아버지 넬슨 만델라는 용서하라고 말했고 성경도, 코란도, 모든 책과 성인들도 똑같이 말하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KPGA는 징계 입장문에서 “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KPGA의 모든 회원과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위상을 떨어뜨렸다”고 비난했다. 회원들 사이에서 김비오의 처지에 동정하는 분위기는 느끼기 어렵다. 투어 흥행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푸념도 나온다. 남의 나라의 일면식도 없는 한 선수의 불행한 일에 눈물을 흘렸다는 노(老) 선수의 모습이 교차돼 떠오른다.

KPGA 투어는 13일 끝난 열다섯 번째 대회로 2019시즌을 마감했다. 개최를 추진했던 투어 챔피언십이 무산돼 황금기인 초가을에 일찍 막을 내려야 했다. 중흥을 꿈꾸는 KPGA에 필요한 것은 스폰서 확보에 앞서 골프에 대한, 동업자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골프는 개인 종목이지만 투어와 협회는 모래알의 모임이어서는 힘을 가질 수 없다. 협회장 교체기가 다가온다. 이맘때면 나타나고는 했던 분열과 반목의 양상을 떨치고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진 경기단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mypark@sedaily.com

박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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