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내수시장 큰 美·中·EU기업보다 수출 많은 韓 제조업 더 타격

[OECD, 디지털세 범위 확대]

바이오기업 등도 이익 늘면 해당국에 세금내야

강대국 패권 경쟁 심화로 정부 세수 확보 '비상'

스웨덴 등 소규모 경제국과 연대...범위 최소화를




당초 구글·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겨냥해 추진됐던 ‘디지털세(구글세)’가 휴대폰·가전·자동차 등 광범위한 소비자 대상 사업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이면서 수출 중심의 국내 기업과 정부의 세수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시장 소재지 내 매출에 근거해 과세하게 되면 내수시장이 큰 미국·유럽·중국 등 강대국은 지금보다 많은 세금을 걷게 되고 우리나라는 제조업과 바이오 등 전 수출산업이 해당돼 기업들의 세 부담이 커질 우려가 높다. 이경근 한국국제조세협회 이사장은 30일 “국제조세체계가 바뀌면 국내 기업들이 과거보다 세금을 더 낼 수도 있고 정부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 모두 가능하다”며 “적용되는 범위를 줄이거나 예외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업도 이익 낸 국가에 세금 내야 할 듯=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20개국(G20)은 디지털세와 관련해 법인 소재지와는 무관하게 시장 소재지의 과세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통합접근법’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소비자로부터 얻은 이윤을 모회사 국가에서만 과세하는 것을 막고 각국이 나눈다는 취지다. 이 경우 넷플릭스·페이스북·네이버 같은 다국적 IT 기업뿐 아니라 제조업 기업도 전 세계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액을 올릴 경우 해당 국가가 과세권을 가진다. 영업이익률이 두자릿수인 바이오 업체가 미국·프랑스에서 판매가 늘었다면 이들 국가에도 세금을 낸다는 의미다.


과세 규모는 기업의 초과이익과 마케팅·판매 기본활동, 추가활동 등에 따라 산출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이익 중 통상적인(국제기구에서 정한) 영업이익률을 초과하는 이익의 일부를 해외 국가에서의 판매 비중에 따라 나눠 세금을 내는 식이다. 예를 들어 다국적기업 A의 글로벌 이익률이 20%, 통상이윤율(이를 넘어서면 초과이익)이 10%, 시장 소재지국에 배분하는 비율이 20%, 연계성(과세권 인정) 기준이 1,000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총 5개의 시장에서 4,000원, 6,000원, 500원, 1,500원, 3,000원의 매출을 냈을 때 각국이 각각 80원, 120원, 0원, 30원, 60원의 세금을 걷을 수 있게 된다. 산업별로 할지, 지역별로 할지를 비롯해 통상이윤율·시장배분율·연계성 등에 대한 합의는 차후 이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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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이다. 최저세율을 정한 뒤 일정 국가에서 이 세율에 미치지 못하면 그 차이만큼 추가로 매긴다는 의미다. 일례로 최저한세를 10%로 잡은 경우 A국가의 한 기업이 특정 국가 B에서의 실효세율이 5%라면 A 또는 B 국가에서 5%만큼 추가 과세가 되는 식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디지털 과세 확대에 찬성했던 독일이 최근 입장변화를 보였는데 스웨덴, 싱가포르, 스위스 등 우리와 이해를 같이하는 소규모 개방경제국가와 연대해 대상 범위를 최대한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

◇강대국 패권경쟁 속 과세 대상 범위 최소화해야=현행 조세조약 국제기준은 외국법인의 국내원천 사업소득에 대해 물리적인 고정사업장이 있어야 법인세 과세가 가능하다. 이로 인해 물리적 법인을 두지 않고도 앱 장터를 통해 전 세계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구글·애플 같은 다국적 IT 기업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세금을 매기지 못했고 조세회피 논란도 번번이 제기된 것이 디지털세 논의의 발단이다. 하지만 미국계 기업이 주 타깃이다 보니 미국 등이 “디지털화 영역을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고 반발했고 이른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원칙론이 부각되면서 IT 외의 산업으로까지 불똥이 튀게 됐다. 강대국의 패권경쟁이 불붙으며 지금까지 100여년간 유지됐던 국제조세원칙의 근간이 일거에 흔들렸고 우리는 ‘고래 사이에 낀 새우’ 신세에 처하게 됐다.

힘의 논리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과 정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OECD와 G20은 연내 두 차례 공청회를 개최한 뒤 내년 1월 130여개국이 참여하는 총회에서 기본골격을 확정하고 3년여 뒤 시행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명백한 제조업의 경우 과세대상에 포함하지 않도록 하자는 입장을 꾸준히 피력해왔다. 다만 현재 논의되는 방향대로 새로운 국제조세체계가 정립된다면 내수시장이 큰 국가와 달리 우리같이 수출 비중이 높고 시장이 작은 국가들의 과세권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의 일방적·자의적 과세가 많아져 과세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이중과세 문제로 조세분쟁 발생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정부는 디지털세가 추후 국내 기업은 물론 법인 세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올해 3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영향 분석과 대응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 김정홍 기획재정부 국제조세제도과장은 “정부 입장에서는 현재 과세를 못하는 구글에 매겨지는 플러스 요인과 국내로 왔던 세수가 다른 국가로 가는 마이너스 부분에 대해 많아진다 적어진다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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