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더뎌지면서 증권사들이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하는 종목이 부쩍 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의 매도 의견 리포트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중립’은 사실상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 종목에 대한 눈높이가 낮춰지면서 대형주 위주의 코스피 시장 거래액도 33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30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들어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한 종목은 38개에 달했다. 대개 어닝시즌에 증권사들의 리포트가 집중되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달 투자의견 하향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 매수에서 중립으로 투자의견을 내린 리포트는 연초인 지난 1월 41개로 가장 많았다. 4월 1·4분기 어닝시즌에는 28개였으며 2·4분기 실적 발표 기간이었던 7월에는 34개였다. 그 이외 기간에는 매달 15개 안팎의 투자의견 하향 보고서가 발행됐다.
이달 들어 투자의견이 중립으로 하향 조정된 종목 가운데서는 은행·보험업종과 여행·항공업종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보험업종에서는 동양생명(082640)·한화손해보험(000370)·DB손해보험·현대해상(001450)·삼성생명(032830)·신한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316140)·하나금융지주(086790)·기업은행(024110) 등 9개 종목의 투자의견이 중립으로 변경됐으며 레저·항공업종에서는 제주항공(089590)·진에어(272450)·하나투어(039130)·모두투어(080160)·호텔신라 등이 하향 조정됐다. 이외에도 기아차(000270)·쌍용차(003620)·현대위아(011210) 등 완성차 및 자동차 부품주와 HDC현대산업개발(294870)·대우건설(047040)·삼성물산(028260) 등 건설주 일부도 하향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3·4분기 어닝시즌을 맞아 투자의견 하향 보고서가 평소보다 많이 발행된 것은 그만큼 기업들의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은행·보험업종은 금리 인하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으로 풀이되며 여행·항공업종은 여행 수요 부진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조보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달 결정된 추가 금리 인하를 포함해 내년 상반기 금리 인하까지 고려하면 은행들의 마진 방어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하향한 리포트를 가장 많이 낸 증권사는 메리츠종금증권이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10건의 투자의견 하향 보고서를 발행했으며 SK증권이 6건, 유안타증권과 현대차증권이 각각 5건의 보고서를 냈다.
국내 증권사들의 ‘매도’ 리포트 비율이 전체 발행 보고서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립’ 리포트를 사실상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증권사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발행된 국내 증권사 리포트 가운데 ‘중립’ 의견을 내놓은 리포트는 전체의 10.2%에 불과했다. 이는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 비중(14.7%)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매도’ 의견을 내놓기 어려운 만큼 사실상 ‘중립’ 의견을 낸 종목은 앞으로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실적 개선이 더딘데다 글로벌 정치 불확실성도 나아지지 않으면서 국내 증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전날까지 코스피의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4조3,511억원으로 2017년 1월(4조1,117억원) 이후 약 2년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코스피지수도 이날 0.59% 하락한 2,080.27로 마감해 10월 들어 2,020~2,090포인트(종가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증시에는 미중 무역협상이 대체로 ‘스몰딜(작은 합의)’에 근접해간다는 것과 미국의 금리 인하에 관한 기대가 이미 반영됐다”며 “지수가 심리적 저항선인 2,100선을 넘어서려면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