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반도24시] 푸틴이 한반도에서 원하는 것

홍관희 성균관대 초빙교수·정치외교학

카디즈 도발 통해 한일분쟁 촉발

中과 연대 동북아 강자 부상 노려

한미일 안보협력 복원 서두르고

美와 동맹 공고화 적극 천명해야

홍관희 교수



지난달 22일 러시아 군용기 편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을 무단 유린하고 돌아간 사건은 러시아의 한반도 전략이 급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전조이다. 이보다 앞선 7월23일에도 중국과 합동으로 전략폭격기를 카디즈에 진입시키고 독도 영공까지 침범해 한일 영토분쟁을 촉발하려는 고도의 심리적 책략을 드러냈다.

지금껏 19년간 러시아를 통치해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비밀첩보조직(KGB) 출신답게 신중하면서도 음모와 기만에 능숙해 매사에 용의주도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소련의 영광을 회복해 러시아의 강대국 정체성을 재연하겠다는 야망을 품어 과대망상형 이상주의자로 분류할 만하나, 끊임없는 권력욕과 마키아벨리적 권력운용술을 겸비해 치열한 현실주의자로서 손색이 없다. 푸틴과 많은 대화를 나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그만큼 푸틴의 세계관이 보편적 국제정세 인식과 괴리돼 있다는 방증이다. 독재자들이 갖는 ‘오만증후군(hubris syndrome)’, 곧 독단과 고립 및 권력 도취 증상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다.

소련 해체 후 재앙에 가까웠던 1991~200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정국 안정을 도모한 그는 러시아 국민의 총아로 떠올라 한때 90%의 지지율을 얻기도 했다. 그의 대외인식 기저에는 소련 치하 냉전기의 반미·반서구 정서가 견고하게 계승돼 살아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포위·압박으로 러시아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은 그의 신념체계를 형성하는 강력한 요소다. 미국을 적으로 규정해 세계 곳곳에서 충돌을 마다하지 않는다. 크림반도 침공 이후 시리아에 개입해 중동의 새로운 ‘경찰 역할’을 자임한 데 이어 이제 한반도로 눈을 돌리려 한다.


푸틴의 동북아 전략목표는 중국과의 군사연대를 통해 반미·반일 지역패권 구도를 구축하고 이 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것이다. 교도통신은 이미 중러가 군사동맹을 체결할 예정이고, 그 타깃이 미국 주도 인도·태평양연합이라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포위를 위해 대(對)러 전략적 우호관계를 구축하려던 구상은 푸틴의 ‘역(逆)닉슨(Reverse Nixon)’ 전략(중국 카드로 미국 견제)으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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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주재 미 대사를 지낸 조지 케넌은 1946년 소비에트 공산체제와의 이념대결 상황에서 세계관 차이가 극명한 미소 간 타협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전쟁이냐 유화(appeasement)냐의 양자택일보다는 참을성 있는 봉쇄로 소련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70여년이 지난 한반도에서 그의 대소전략 구상은 여전히 적실성을 발휘한다.

중·러가 핵무장한 북한을 앞세워 남진하려 한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한반도 정세가 무정부적 힘의 공백 상태로 가기 전에 한미동맹 공고화와 한미일 안보협력 복원이 필수이고 ‘인도·태평양전략’ 가담도 불가피하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고 좌고우면할 여유도 없다. 러시아의 카디즈 도발 이후 미국이 전략폭격기 B-52를 발진시켜 “러시아의 추가 시도를 막을 것”이라며 무력시위를 벌인 것은 그나마 동맹이 아직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도 동맹 취지에 맞게, 미국이 위험에 처할 때 기꺼이 도울 수 있음을 천명해야 한다. 현재 한미 간 논의 중인 ‘미국 유사시’ 한국의 동참 문제는 ‘공동의 적, 공동 대응’의 동맹정신에 입각해 흔쾌히 합의돼야 한다. 일본은 2014년에 헌법의 해석변경을 통해 미국 유사시 함께 싸우겠다는 집단자위권을 선언했다.

북한이 초대형방사포를 쏴 올린 다음날 ‘한반도 전쟁 위협이 제거됐다’는 청와대 실장의 국회 증언은 망언 수준이다. 도를 넘는 외교안보 무능과 대북 유화책으로 국민의 불안이 공포로 바뀌고 있다. 이슬람국가(IS) 수괴를 제거한 트럼프 대통령이 여세를 몰아 김정은 폭정을 종식시키기를 국민 다수가 고대함은 자유와 생존을 향한 열망의 표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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