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해 “우리는 중국 정부와 화웨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화웨이는 미국 군대와 정보당국의 큰 걱정거리로 우리는 화웨이와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올 6월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오사카 정상회담 때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면허를 미국 기업에 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허가 사례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뒤집을 정도로 화웨이는 미국의 핵심 협상 카드였다. 미 경제방송 CNBC는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규제를 우회할 수 있게 소수의 미국 기업에 허가를 주라고 내부적으로 지시했지만 지금까지 허가된 게 없다”며 “아직 면허가 승인되지 않은 것은 백악관이 무역협상에서 쓰기 위해 지렛대로 남겨둔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후 화웨이 스마트폰에서 구글 지도 서비스가 제외되고 인텔과 퀄컴 같은 업체로부터는 반도체 칩을 구매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확보해놓았던 재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대표 정보기술(IT) 업체인 화웨이가 고사 직전까지 내몰린 셈이다. 중국 정부가 무역협상의 목표를 미국의 추가 관세부과 철회와 화웨이 규제완화로 삼았을 정도다.
미국이 화웨이를 물고 늘어지던 그동안 모습과 달리 3일(현지시간)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이 화웨이에 대한 미국 기업의 수출제한을 풀어주겠다고 한 것은 미국의 대중 무역협상 전략이 바뀌었음을 뜻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화웨이의 숨통을 터줘 중국의 양보를 추가로 얻고 1차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이 “1단계 합의는 역사상 가장 많은 (농산물) 주문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수차례 공언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에 대한 규제를 일부 완화해 성과를 내려고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일부 풀어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안보에 문제가 없는 일반적인 물품을 화웨이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선의의 제스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기업들의 불만도 수출허가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가 미국 기업에서 부품을 공급받지 못하면 결국 한국이나 일본 기업으로 조달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정부가 신장위구르 지역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로 중국의 인공지능(AI) 업체 8곳을 포함해 총 28개 기관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대중국 수출이 계속 줄고 있는 것도 업계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의 제재로) 화웨이가 한국과 일본·대만 등 전 세계 경쟁업체로부터 일부 부품을 구입할 수 있다”며 “업계에서는 안보와 관련돼 있지 않은 제품의 화웨이 수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규제완화 움직임과 별도로 미국이 대만 정부에 TSMC가 화웨이에 반도체를 수출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트럼프 정부 관계자가 워싱턴DC에서 대만 외교관들을 만나 TSMC가 만드는 화웨이용 반도체가 중국의 미사일에 사용된다는 점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TSMC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다. TSMC가 화웨이에 대한 수출을 줄이면 화웨이 입장에서는 더 미국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미국의 협상력이 강화되면서 중국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어 향후 협상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