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론직설] “치유 공간으로 진화하는 농촌… 규제 풀어야 농업 생존의 길 열린다”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

WTO협상 조기 타결 예상...경쟁력 강화 '발등의 불'

건축· 위생 등 부처별 규제 뒤얽혀 新산업 탄생 막아

지역에도 규제프리존 도입해 혁신투자 이끌어내고

모샤브 벤치마킹해 은퇴자·청년 일자리 창출해볼만

스마트팜 성공하려면 운영방식 민간 자율에 맡겨야




“농촌이 단순 생산에서 치유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데도 부처마다 가득한 거미줄 규제로 새로운 농업이 탄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정 기간 규제를 제로로 하는 규제프리존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개방화·고령화로 내몰리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농촌에도 규제를 걷어내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퇴장으로 은퇴자가 쏟아지고 청년 일자리 문제도 심각한 만큼 은퇴자와 청년들이 농촌에서 함께 일할 공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국가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이를 위해 이스라엘의 공동체 모델인 키부츠나 모샤브에서 밴치마킹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선언과 중국·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을 계기로 김 전 장관을 지난 7일 본사 회의실에서 만나 농업 경쟁력을 높일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농업 경쟁력 강화 대안으로 스마트팜이 부상하고 있지만 많은 문제가 있다”며 “공기관이 일부 투자했더라도 운영은 민간 자율에 맡기고 경쟁을 통해 살아남도록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오승현기자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농업 경쟁력 강화 대안으로 스마트팜이 부상하고 있지만 많은 문제가 있다”며 “공기관이 일부 투자했더라도 운영은 민간 자율에 맡기고 경쟁을 통해 살아남도록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오승현기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얼마 전 “향후 WTO 협상이 열릴 경우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는데.


△우리나라의 개도국 지위에 대한 이의 제기는 1990년대부터 있었고 올해 초부터는 WTO의 개혁과제 중 하나로 논의됐다. 최근 미국이 거세게 문제를 제기한 후 정부가 종합검토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우리 경제의 위상을 감안할 경우 개도국 특혜를 주장할 명분도 부족하고 회원국들이 수용할 가능성도 낮으며 현재와 미래의 득실까지 따졌을 때 개도국 특혜를 계속 주장하는 것은 실이 더 크다.

-WTO 다자협상 정체로 개도국 지위 반납이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미국 의회가 내년 6월로 예정된 WTO 장관회의를 데드라인으로 정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국제협상이라는 것은 굉장히 불투명하다. 2001년 시작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지만 새로운 것으로 해보자는 컨센서스가 형성되면 어느 날 갑자기 바뀔 수도 있다. 지금 협상의 프레임은 거의 다 짜여 있기 때문에 선진국과 개도국 지위 분쟁 등 몇 가지만 타협하면 그냥 바뀔 수도 있다. 또 내년에는 초대형 FTA 가운데 하나인 RCEP에도 최종 서명한다. 그런 측면에서 개도국 지위 문제를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 WTO 협상이 열릴 경우 쌀을 포함한 민감품목 보호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개도국 지위에서 벗어난다면 피해가 있는 곳에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개도국 지위에서 벗어날 경우 관세와 보조금 부문의 타격이 큰가.

△관세율은 어차피 우리나라가 수많은 나라와 체결한 FTA로 ‘0’까지 내리는 목표연도가 단계별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개도국 지위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그 부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본다. 보조금 지급 규모도 다소 줄어들겠지만 WTO가 허용하는 형태로 전환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그전까지 우리 농업 부문의 경쟁력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수십년간 농업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했지만 성과가 미약하다는 비판이 높다.

△근본적으로 농업정책만으로는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농촌경제 활성화가 잘 안 되는 데는 구조적인 문제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환경·건축·위생규제 등 각종 규제가 가장 큰 문제다. 주무부처가 국토교통부·환경부·행정안전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으로 나뉘어 있어 부처 간 이익이나 여러 사정으로 규제가 풀리지 않는다. 농촌에서 조그만 가공공장을 하려고 해도 식품이니까 대기업에 적용되는 기준을 그대로 적용받는다.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자면서 민박에도 굉장히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사망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구조다. 미국 농무관 시절 미국 농장에 가본 적이 있는데 농가에서 자연스럽게 사과 주스를 만들어 팔고 있더라. 처음부터 다 막아놓으면 어떻게 성장이 되겠나. 사과만 팔아서는 한계가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 가공을 해서 사과 주스나 사과 분말 등 다양한 형태로 내다 팔아야 소득이 늘고 젊은이들도 들어갈 수 있다. 농장 단위로 민박도 하고 관광도 하고, 농촌을 즐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청년들이 들어와 뭔가 할 수 있지 않겠나.

-농촌 규제를 완화할 방법은 없나.

△규제프리존, 규제 제로 기간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식품안전이나 위생에 관한 기준을 해제할 수는 없지만 일정 기간, 일정 지역이나 장소에 대해 규제를 완전히 없애줄 수는 있다. 농촌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오·폐수처럼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범위 등 최소한의 기준을 두고 나머지는 모두 한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우리 농업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나.

△농업은 이제 단순히 먹는(생산) 농업이 아니라 기능성 농업, 치유농업, 관광농업 등 기능 및 역할이 다양해지고 있다. 농촌이 농민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휴양·오락·관광 등을 제공하는 토털 서비스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정부는 그에 맞는 대책으로 받쳐줘야 한다. 쌀·과수·축산물 등 먹는 생산물 중심의 농업만 보이니 젊은이들이 ‘3D 업종’이라고 여겨 오지 않는다. 그런 부분에서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들어와서 관광농업, 기능성 농업, 힐링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고달픈 도시민들이 농장에서 며칠 쉬면서 농사도 지어보고 가공해서 뭔가 해보기도 하고 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농촌마다 폐교가 넘치지만 교육부에서 기준을 까다롭게 해 함부로 처분할 수도 없다. 청년들이 와서 예술공간·힐링공간 등을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

-농촌 인력이 급감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5,200만명의 절반 가까이가 수도권에 산다. 굉장히 비정상적이다. 지금도 인구 유출 속도가 엄청나다. 아무리 농촌에 돈을 퍼부어도 젊은이들은 빠져나가고 농촌에는 나이 든 노인들만 남는다. 아이를 낳으면 500만원, 1,000만원을 주지만 임시변통이다. 농촌이 거대한 양로원으로 전락하게 놓아둬서는 안 된다. 농촌을 젊은이와 노인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스라엘의 키부츠·모샤브 모델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노장층이 같이 어울려 있는 공동체 생활 모델이다. 젊었을 때는 반드시 여기서 일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도 농촌에 젊은이와 노인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어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시적으로 조세와 각종 부담금을 면제해준다든지 병역 혜택이나 규제를 대폭 완화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은퇴자들, 토지지분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경영 노하우나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 마케팅 능력과 글로벌 판매능력을 가진 사람, 현장 근로자들이 함께 만들어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도 만들어주는 필수적인 정책이다. 국가적인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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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와 경북 상주에 스마트팜을 만들고 있지만 잘 안 되는 것 같다.

△농업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팜이 우리 농업의 체질 개선과 미래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많은 문제가 있다. 국가가 일부 투자한 스마트팜이라 하더라도 운영은 민간 자율에 맡겨야 한다. 적자가 나면 내 봉급과 내 재산이 날아간다고 생각해야 제대로 된다. 중소 규모로 해서 운영의 자율권을 주고 자기들끼리 경쟁해 탈락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운영해 쓸데없이 사람을 많이 뽑고, 젓가락 놓는 사람이 많고, 사인하는 사람이 많으면 안 된다.

-기능성 농업의 발전 가능성은.

△기능성 농업은 약품이나 건강식품 소재를 만들어내는 농산물을 재배해 판매하는 고부가가치 농업이다. 고혈압·당뇨·비만 등을 치유하는 기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식물을 키우는 것이다. 산학연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연구·개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강과 산·들이 있어 산야초나 자생식물 가운데 약용작물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중국·중동시장이 가까이 있고, 효과가 입증되면 비싸게 팔아도 수요가 많을 것이다. 약용식물이라서 한약재 유통 시스템을 따르도록 강제한 까다로운 규제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자본은 못 들어오는 것인가, 안 들어오는 것인가.

△두 가지 이유가 모두 있다. 여러 규제가 있고 많이 풀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농민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는 정서적인 측면도 있다. 수출을 위해 유리온실을 만든 기업이 생산품을 해외에 팔지 못해 일부를 국내에 팔면 국내 가격이 떨어지면서 농민들이 문제를 제기한다. FTA 피해산업을 지원할 경우 농촌 기업에 결과적으로 보조금이 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문제로 삼는다.

-최저임금 고속 인상이 농가에도 어려움을 준다고 하는데.

△최저임금 인상은 도시의 산업체뿐 아니라 농촌경제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농촌의 인건비 가운데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건비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먹여 살리려고 농사짓는 신세로 전락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산업·지역 간에 신축성을 두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형평성 등 실제 적용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무리하게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제대로 단속을 안 해서 그렇지 단속한다면 농촌이 어떻게 되겠는가.

-선진국도 우리와 비슷한 농촌문제를 앓고 있나.

△선진국도 고령화, 생산성 하락 등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튼튼한 농업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농업 기술개발을 많이 해서 안정적이고 경쟁력도 있다. 농업이 농산물에만 있지 않고 기계산업, 화학, 생명공학과 연결돼 있다.

-세계적으로 이스라엘과 네덜란드 농업이 앞서 있나.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작은 꿈을 위한 방안은 없다’는 그의 저서에서 “농업은 95%가 과학이고 5%가 노동”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반대로 알고 있다. 그는 초대 수상 밴 구리온의 비서로 있다가 외무·운수·과기·국방·재무 장관에 총리까지 마친 이스라엘의 건설자다. 그가 마지막 열정을 농업 발전에 쏟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농업이 탄탄한 모델이 됐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면서 그 혜택이 농업분야에 떨어지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기초연구는 정부가, 응용기술은 민간이 개발해야 한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He is…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957년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났다.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21회로 공직에 입문해 농림부에서 보냈다. 농산물유통국장, 기획조정실장, 농촌진흥청장, 제1차관,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때 장관을 지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경우 두 번이나 연임해 공기업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라는 기록도 세웠다. 틈틈이 공부해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시간주립대 경제학 석사, 중앙대 경제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위기에서 길을 찾다’ 등 8권의 저서도 펴냈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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