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아프간의 38선 '듀랜드 라인'

1893년 인위적 국경선 획정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 외무장관 모티머 듀랜드. /위키피디아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 외무장관 모티머 듀랜드. /위키피디아



1893년 11월12일 아프가니스탄의 압두르 라만 칸과 영국이 지배하는 인도의 외무장관 모티머 듀랜드(사진)가 국경 협정을 맺었다. 6개 조항인 협정의 핵심은 영토 할양과 국경선 획정. 먼저 2,460㎞에 이르는 땅을 국경으로 삼았다. 이른바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이라는 국경선이 이때 생기고 아프간의 남부지역이 대거 영국령 인도로 넘어갔다. 러시아의 남진을 막아 인도를 지켜내려는 영국이 서둘러 경계선을 획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국경이 흔들려 제국의 안정이 훼손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영국과 러시아가 지역의 패권을 놓고 80년 가까이 경쟁하는 ‘그레이트 게임’의 와중에 지역 토호들의 권력 다툼까지 더해진 상황. 인도 북부 치트랄(지금은 파키스탄) 지역을 통제하려다 거꾸로 몰살 위기에 빠진 영국군 소부대의 소식이 매일같이 신문지상에 소개되며 런던에서는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달려들기 전에 국경을 획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2차 영·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의 힘으로 왕위에 오른 압두르 라만 칸은 순순히 남부지역을 내놓았다. 어차피 통치권이 제대로 먹히지도 않는 지역이어서 아프간은 1914년 협정에서도 듀랜드 라인을 국경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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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세월과 새로운 제국주의. 1947년 인도에서 독립한 파키스탄은 국경 협정을 계승한 반면 아프간의 생각은 달랐다. 1949년 부족 지도자회의에서 영국령 인도가 소멸한 이상 듀랜드 라인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파키스탄은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파슈툰 지역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간이든, 파키스탄이든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던 파슈툰족의 평화는 1979년 말 소련의 침공으로 무너졌다. 무자헤딘으로 변한 파슈툰족은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으며 소련에 맞섰다.

소련 붕괴 이후에 듀랜드 라인의 파슈툰 지역은 더욱 피로 물들었다. 이슬람 테러 세력의 배후로 지목받으며 미국 등 연합군의 공격에 집과 가족을 잃었다. 총칼의 힘은 이들을 누를 수 있을까. 미국에도 파슈툰 지역은 골칫거리다. 아프간 지역을 평정하면 동쪽의 땅인 파키스탄 지역으로 숨어들어 전력을 가다듬는 구조니까. 미국은 파키스탄을 회유하고 윽박질러 이런 구조를 깨려고 하지만 국가보다도 동족 의식이 강한 파슈툰 지역의 증오는 날로 커져만 간다. 파슈툰판 3.8선 격인 듀랜드 라인은 과연 언제까지 피를 부를까. 소망한다. 인위적인 선 긋기와 제국주의 침탈의 폐해가 이제 그치기를. 억압받는 곳에 신의 가호와 평화가 깃들기를.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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