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택시 AI 적용 '하세월'...시동 못거는 '벤티'

기존 택시사 배차현황 칠판에 적고

수기 근무일지 등 IT와 거리멀어

차량·기사·면허까지 준비 됐지만

출시 지연되고 200대로 규모 축소




“벤티 들어온 지 한 달은 됐을걸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진화택시 차고지에는 라이언과 튜브, 콘 등 카카오(035720) 캐릭터로 단장한 대형택시 ‘벤티’ 50여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새하얀 외관에 내부 의자는 비닐조차 벗겨지지 않은 새 차 그대로였다. 또 이들 대형택시를 운전할 기사들까지 채용 중이어서 사무실 한쪽에는 이력서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차량과 기사, 심지어 면허까지 모든 준비가 됐는데도 ‘벤티’는 수개월째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3일 모빌리티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중 출시될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카카오모빌리티의 대형택시 ‘벤티’가 아직 정식 출시를 못 하고 있다. 또 700~800대로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선 주문된 차량은 200대에 불과하고, 이후 추가 주문도 없는 상황이다.

벤티는 타다처럼 면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진화택시, 중일산업 등 7곳의 법인택시회사 인수에 이어 최근 원일교통과 신성콜택시 등 2곳과 추가 계약을 완료하면서 총 892개의 면허를 확보했다.


이 같은 일정 지연에 대해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택시 회사들이 차량도 바꿔야 하고 IT 기술까지 배워야 하니 부담이 커 진입 장벽이 높다”면서 “새로운 사업을 했을 때 수익이 과연 보장될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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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티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직접 운영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개별 택시 회사가 전체 운영을 전담한다. 카카오모빌리티가 AI를 활용한 배차 시스템 효율화 등 기술적 지원이나 브랜드 홍보의 역할을 담당하고, 개별 택시 회사들이 차량을 구매하고, 기사도 직접 고용해 운영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카카오모빌리티가 기술을 지원하더라도 그 기술을 실제 운영에 적용할 수 있는 IT 활용능력이 택시 회사들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기존 택시 회사들에게 AI는 낯선 용어일 뿐이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80~90년대식으로 운영되는 택시 회사들이 정말 많다”면서 “심지어 배차 현황을 사무실 칠판에 쓰거나 근무일지도 수기로 작성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엑셀’만 쓰더라도 굉장히 선진화된 경우”라면서 “기술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해당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기까지에는 시간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다 보니 AI를 활용한 배차 효율화의 필요성에도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구조다. 예를 들어 카카오모빌리티나 ‘타다’를 운영하는 VCNC 등에서는 운행 중인 차량의 실시간 위치를 추적해 배차 시스템을 고도화한다. 승객이 호출했을 때 20분 거리에 있는 빈 차를 배차하기보다는 1분 뒤 다른 승객이 내릴 5분 거리에 있는 차를 배차하는 것이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수기로 근무일지를 작성하는 이들에게 컴퓨터 화면에 실시간으로 차량 현황이 뜨는 게 익숙지 않을 수밖에 없다”면서 “일각에서는 ‘실시간 위치’를 확인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벤티는 요금 문제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벤티는 택시 회사들이 운영주체이다 보니 요금 신고도 그들의 몫이다. 이들 택시 회사들끼리 뿐만 아니라 서울시와도 요금 협의를 진행했었어야 했고, 그 때문에 아직 요금 신고를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카카오모빌리티와 서울시 간의 요금 협의는 최근 끝났다”면서 “요금 신고 주체가 개별 택시회사인 만큼 해당 서류들을 모아 최종 신고해야 절차가 남았다”고 말했다.


백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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