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과 21일에 있을 2국과 3국에서 한돌이 조금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천재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이 18일 서울 강남구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토종 인공지능(AI) ‘한돌(HanDol)’과의 치수고치기 3번기 제1국에서 92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둔 후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펼친 대결에서 1승을 거두며 ‘AI를 이긴 인류 유일의 기사’가 된 이세돌 9단은 이날 한돌과의 대국에서도 승리를 거머쥐면서 세계 바둑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호선(맞바둑)이었던 알파고와의 대결과 달리 이번에는 이세돌 9단이 2점을 깐 상태에서 덤 7집 반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만큼 AI의 실력 우위를 인정하고 시작된 경기였다. 경기 초반 이세돌 9단은 머리를 쓸어 넘기거나 한숨을 쉬는 등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 중반 이세돌 9단이 78수를 둔 후 한돌은 이상 반응을 보이며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실수가 이어졌다. 이후 한돌이 백돌 3개를 잡히면서 승률이 3~4%로 폭락했고, 결국 오후 4시 30분 종료 예정이었던 경기는 이보다 훨씬 빠른 오후 2시 23분경 끝났다.
이날 대국에서 ‘신의 한 수’로 통한 78수는 프로기사라면 흔히 두는 수지만 AI는 잘 두지 않는 수다. NHN 관계자는 “78수는 세계 최강의 AI 바둑이라는 중국의 절예도 못 본 수이며, 벨기에의 릴라제로도 못 본 수”라면서 “한돌이 이세돌 9단의 78수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도 78수를 두면서 승리했다.
경기 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돌의 우세를 예상했다. NHN이 지난 2017년 개발한 바둑 AI ‘한돌’은 올해 1월 신민준, 이동훈, 김지석, 박정환, 신진서 9단과의 릴레이 대국에서 전승을 거두고, 8월에는 세계 AI 바둑대회에서 최종 3위를 기록하는 등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때문에 한돌은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과 겨뤘던 ‘알파고 리’의 수준을 훌쩍 넘어섰고, 2017년 커제 9단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알파고 마스터’보다도 한 수 위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NHN에 따르면 2019년 버전인 한돌 3.0의 ‘엘로 레이팅’(Elo rating·바둑, 체스 등 1대1 대결을 하는 게임에서 개별 플레이어의 상대적인 실력을 계산하여 점수를 매긴 것)을 4,500 이상이며, ‘알파고 리’는 3,700, 인간 9단은 평균 3,500 정도다.
하지만 한돌은 이세돌 9단에게 불과 2시간여 만에 패배했고, 2점 접바둑에 대한 학습량 부족이 주요 패인으로 꼽혔다. 평소 한돌은 호선(맞바둑)을 기본 설정으로 학습해왔고, 이날 경기처럼 2점 접바둑을 학습하는 것은 불과 2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경기 후 한돌 개발을 맡은 이창율 NHN 게임AI팀장은 “머신러닝은 학습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능이 올라간다”면서 “한돌은 2점 접바둑뿐 아니라 3점 접바둑도 준비해야 해 전체적인 학습량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이세돌 9단이 평소와 달리 수비에 집중한 전략을 취한 것도 이 같은 결과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현장 해설을 맡은 김만수 9단은 “이세돌은 원래 공격적인데, 오늘은 수비적으로 나왔다. 집을 많이 가져가면서, 한돌의 공격을 묘수로 뚫었다”며 “그래서 한돌이 당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경기 후 이세돌 9단 또한 “경기 전 10일 동안 2점을 두는 형식으로 연습을 했다”면서 “그 결과 수비적인 전략을 취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승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었다”고 말했다.
한편 한돌과의 2국은 19일 오후 12시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개최되며 이세돌 9단이 1국에서 승리하면서 호선(맞바둑)으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