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 무마, 일가 비리 등 각종 의혹의 피의자로 서울중앙지검과 동부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수사 4개월 만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공교롭게도 영장 청구는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리는 제8차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 23일 이뤄졌다. 조 전 장관에 대한 혐의 입증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검찰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가 비리보다는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에 수사의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감찰 무마 결정에 관여한 청와대 관계자는 물론 ‘윗선’에 대한 강제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이정섭 부장검사)는 이날 조 전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영장에는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과 금융위원회에 각각 직권을 남용한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중앙지검이 아닌 동부지검이 먼저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검찰이 조 전 장관의 혐의 중 직권남용을 가장 중요하고 명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 전 장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등 핵심관계자가 감찰이 중단된 사실 자체와 그 책임소재가 조 전 장관에게 있음을 검찰 조사에서 인정한 부분도 크게 작용했다.
조 전 장관은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자녀 입시비리 관여 의혹 △불법 사모펀드 투자 의혹 △일가 수사 증거인멸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14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서울중앙지검의 비공개 소환조사를 받았고 동부지검에는 지난 16일과 18일 연달아 출석했다. 여기에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수사 혐의도 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번에 동부지검에서 먼저 영장을 청구한 것은 일가 비리 의혹과 관련해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동일한 혐의로 이미 구속된데다 조 전 장관 본인이 직접 연루된 혐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고려해 ‘무리수’를 피해가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이번에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중앙지검에서 수사를 진행 중인 혐의의 경우 조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청구 없이 바로 기소해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조 전 장관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혐의는 문재인 정부 들어 이뤄진 국정농단과 사법행정권남용(사법농단) 수사에서 고위공직자를 구속하는 ‘단골’ 논리였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7년 국정농단 사건 당시 이석수 전 대통령 특별감찰관 등 공직자와 민간인을 불법사찰했다는 혐의(직권남용)로 구속됐다. 사법농단 사건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됐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역시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를 고려하면 조 전 장관이 구속될 가능성이 적지 않지만, 우 전 수석처럼 국가정보원을 동원하는 등 불법적인 수단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판단할 경우 직무범위 내의 행위로 판단해 기각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기존에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강제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조 전 장관의 직속 보고라인에 있었던 이인걸 특감반장, 박 전 비서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물론이고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천경득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이 구속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조 전 장관을 통해 감찰 중단 의사를 전달했을 것으로 보이는 친문(親文) 인사 등 윗선을 겨냥한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는 이번 영장 청구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정당하고 합리적인지는 법원이 판단할 것”이라며 당시 감찰 중단은 청와대의 권한 내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 상황에서 검찰이 무리하게 조 전 장관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다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오는 26일 권덕진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 권 부장판사는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