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의 인수합병(M&A) 건수가 올해 사상 최대 규모로 치솟았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무역전쟁으로 사업여건이 어려워지자 대기업을 중심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자제하고 구조개편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결과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현지시간) M&A 조사업체 리코프의 분석을 인용해 일본 기업들이 올해 국내에서 체결한 M&A 건수가 2,840건으로 지난해의 2,814건을 뛰어넘어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월 평균 200건가량의 M&A가 이뤄지고 있다. 올 들어 이달 18일까지 일본 기업들은 경쟁사 인수에 6조엔(약 63조7,800억원)을 쏟아부으면서 금액 규모로도 지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 최대 제조사 히타치는 M&A를 통한 구조개편으로 2008년 22개에 달했던 계열사를 3개까지 줄였다. 이달 18일에는 도쿄증시에 상장된 화학 자회사 히타치카세이를 경쟁사인 쇼와덴코에, 영상진단기기 사업을 후지필름홀딩스에 각각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매각금액 총 6,730억엔인 이번 계약으로 히타치는 사업재편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영상진단기 사업을 인수한 후지필름은 2016년 도시바메디컬시스템스 인수전에서 캐논에 패배한 뒤 절치부심 끝에 헬스케어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전자기기 업체 도시바도 최근 일본 M&A 시장에 자주 등장한다. 도시바는 6개월간 자회사 350여개 가운데 53개를 정리한 후 2,000억엔을 계열사 지배력 강화에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 공장자동화 업체 옴론도 4월 전자회사 일본전산(Nidec)에 차량부품 자회사인 옴론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를 매각했다. 매각대금 1,000억엔을 핵심사업인 공장자동화와 헬스케어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일본 기업들의 M&A붐은 글로벌 수요둔화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 속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FT는 대기업들이 자회사들로 이뤄진 거대한 포트폴리오의 구조개편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M&A를 통해 저평가된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FT는 M&A 전문가를 인용해 “최고경영자(CEO)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유망사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서 금융시장에서 내년에도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