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집단 단결권보다 개별 단결권"...또 ‘친근로자’ 판결 내놓은 대법원

"유니온숍 협정 위반해도 소수노조 가입 이유 해고 부당"

헌재 심판과 달라 파장...강성노조 득세 계기될 가능성

대법원 청사 전경대법원 청사 전경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친노(親勞)’ 성향을 잇따라 보이고 있는 대법원이 또다시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놨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이미 합의한 ‘유니언숍’(shop) 규정을 근로자가 어겼어도 소수 노조에 가입했다면 해고할 수 없다는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어서 유니언숍을 도입한 사업장에 강성노조가 득세하는 기반이 법적으로 마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제주도의 한 버스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해고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앞서 회사는 지난 2016년 3월 근로자가 입사와 동시에 노조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이를 탈퇴하면 해고할 수 있는 유니언숍 협정을 A 노조와의 단체협상을 통해 체결했다. 유니언숍은 근로자의 노조 가입을 의무로 규정해 근로자의 권익과 노조의 단결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대신 근로자는 입사와 동시에 노조에 가입해야 하며 노조에서 탈퇴하면 회사는 바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

2515A18 문재인정부


하지만 2017년 6월 이 회사에 버스기사로 취업한 이모씨 등 근로자 3명은 입사 후에도 의무사항인 A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가 그해 12월 새로 생긴 B노조에 가입했다. 회사는 이들이 입사 후 기존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신생 노조에 가입한 것은 유니언숍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해고를 통보했다. 이씨 등은 회사의 해고가 부당하다며 제주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명령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자 회사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원칙적으로 보장하는 유니언숍의 중요성이 인정되지만 소수 노조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만약 해당 근로자가 기존 노조에 가입하지도 않고 소수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았다면 충분한 해고 사유가 되지만 소수 노조에 가입했기 때문에 사측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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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은 근로자가 유니언숍 협정을 위반했더라도 다른 노조에 이미 가입했다면 해고 등의 조치를 사측이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첫 사례다. 이는 기존 고용노동부의 행정지침과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 심판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노동부는 앞서 유니언숍 협정이 체결된 회사에 입사하는 근로자가 소수 노조에 가입하려면 원칙적으로 다수 노조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뒤 소수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법령해석을 내렸다. 헌재도 당시 유니언숍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근로자의 집단적 단결권이 개인의 단결권보다 우선한다고 봤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상대적으로 진보색이 짙은 일선 근로현장의 소수 노조가 더욱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기존에는 유니언숍 협정을 맺은 사업장에 입사한 근로자가 소수 노조에 가입하려면 다수 노조에 먼저 가입한 뒤 탈퇴해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앞으로 바로 소수 노조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이번 판결은 복수노조 허용 이후 대법원이 유니언숍의 효력 범위를 판단한 첫 사례”라며 “개별 근로자가 노조 가입을 하는 것에 대한 자율성과 선택권을 강제성보다 우위에 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법원의 친노동자 판결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갈수록 증가세다. 지난해 9월 주말 연휴에 쉬고 월요일에 출근한 콜센터 상담원이 고객과의 상담전화 도중 쓰러진 사건에 대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올 2월에는 근로자의 육체노동 연한 기준을 60세에서 65세로 30년 만에 변경하는 판결을 내놨다. 이달 초에는 노사 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기존 계약이 근로자에게 유리하다면 이를 우선해야 한다는 판결까지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현 정부의 친노동자 판결이 느는 배경을 놓고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 대거 발탁됐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대법원 재판부는 지난해 8월 김선수·이동원·노정희 신임 대법관을 시작으로 전체 대법관 14명 중 8명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으로 채워졌다. 법원 내 진보단체로 꼽히는 우리법연구회 창립멤버인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다수 대법관이 진보 성향의 법관으로 분류되는 탓에 기존 판례와 다른 전향적인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도현 노무법인 리담 대표노무사는 “복수노조 체제에서 유니언숍은 다수 노조가 노조원들을 상대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수단이었는데 이번 판결로 상당 부분 입지가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며 “소수 노조를 선택하는 근로자가 늘면 사측에는 다수 노조와 소수 노조까지 함께 신경 써야 하는 등 적잖은 부담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지성·세종=박준호기자 engine@sedaily.com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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