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그룹이 지주 회장과 은행장 겸직 체제를 분리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차기 우리은행장 선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합병 이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이 은행장 자리를 번갈아가며 차지했던 관행이 이번에는 깨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내외 리스크가 커지는데다 은행도 성장 한계를 직면한 상황에서 조직 발전의 발목을 잡는 계파 갈등을 끝내고 능력 위주의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지난 6일 차기 우리은행장 선출을 위한 그룹 임원추천위원회를 열고 차기 행장 선임 절차에 돌입했다. 주요 후보로 정원재 우리카드 사장, 조운행 우리종합금융, 이동연 우리FIS 사장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지난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께 회장 쇼트리스트(압축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렸다. 은행 내부에서는 김정기 영업지원부문장과 정채봉 영업부문장도 거명된다. 특히 손 회장이 “내부 출신 은행장을 고려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히면서 외부 출신 인사가 발탁될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점쳐진다. 임추위는 이번 설 연휴 직전까지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차기 우리은행장 선임을 두고 은행 안팎에서는 출신 은행에서 탈피한 인사가 이뤄질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직원 대부분이 합병 이후 우리은행 공채를 통해 입사한 터라 더 이상의 계파 중심 인사는 불필요하다는 분위기다. 특히 우리은행 민영화 이후 IMM프라이빗에쿼티·한화생명·동양생명·키움증권·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자산운용·유진자산운용 등 7대 과점 주주를 대표하는 사외이사들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능력 있는 행장 선출을 원한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그동안 우리은행장 자리는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들이 번갈아가며 맡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했다.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한빛은행이 출범한 후 초대 행장을 맡았던 김진만 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다. 이후 외부 출신 인사가 줄곧 행장 자리에 올랐다가 이종휘(한일은행 출신) 행장, 이순우(상업은행 출신) 행장, 이광구(상업은행 출신) 행장 등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이 번갈아가며 행장 자리에 앉았다.
손 회장 역시 능력 위주의 인사를 단행할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지주 출범 2년 차를 맞아 비은행 부문 인수합병(M&A)을 비롯해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리스크 관리, 조직 안정 등 숙제가 산적해 차기 행장의 탁월한 업무 능력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처럼 한일이냐, 상업이냐를 따지지 않고 최우선적으로 은행 위기를 극복할 인사가 적임자라는 얘기다. 앞서 손 회장은 2017년 취임 당시 “계파 갈등 없는 은행을 만들겠다. 시스템과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할 것”이라며 임직원들의 계파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밝힌 바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임추위는 손 회장이 사내이사 자격으로 위원장을 맡아 손 회장의 의견이 이번 행장 인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외부에서도 역시 금융권 채용과 인사가 능력 중심으로 변화하는 흐름에 따라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역시 계파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들이 성장 한계를 맞은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은행 자체에서 인사 혁신이 시작돼야 한다”며 “매번 반복되는 라인, 계파 선임으로 조직 내 갈등을 키우기보다는 차기 CEO의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