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근현대 호텔로 본 그 시절의 욕망들

■문화역서울284 '호텔사회'展

서구식 숙식·여행문화 시발점이자

거물들 사교·유흥의 공간이던 호텔

역사적 고증에 예술적 상상력 더해

워커힐 호텔의 극장을 재구성한 그릴홀 전경. /사진제공=KCDF 문화역서울284워커힐 호텔의 극장을 재구성한 그릴홀 전경. /사진제공=KCDF 문화역서울284



근대 개항기인 1880년대 인천에 ‘대불호텔’ 간판이 걸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이었다. 경인선 철도가 생기기 전이니 인천에서 서울까지 말 타고도 한나절이 걸렸다던 시절이다. 호텔은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새로운 문물과 문화 향유의 방식을 보여주는 일종의 플랫폼이었다.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284의 중앙홀이 근대기 고급 호텔로 변신했다. 호텔과 역의 공통점은 여행문화의 출발지점이라는 것. 호텔의 역사 위에 예술가적 상상력을 더한 독특한 기획전 ‘호텔사회’가 8일 개막해 오는 3월 1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의 입구 격인 중앙홀은 붉은 계단 위로 커튼이 길게 드리워 호텔 로비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중간공간제작소가 디자인한 ‘익스프레스 284 라운지’이다. 이곳에는 전시기간 내내 바리스타가 상주하며 매일 200잔씩 무료로 커피를 제공한다. 날짜만 잘 맞추면 그랜드워커힐,더플라자,서울웨스틴조선호텔 등이 제공하는 빵도 맛볼 수 있다.

호텔의 문화적 과시를 엿볼 수 있게 조성된 서측복도에서은 전현선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호텔의 문화적 과시를 엿볼 수 있게 조성된 서측복도에서은 전현선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호텔의 문화적 과시를 엿볼 수 있게 조성된 서측복도에서은 장종완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호텔의 문화적 과시를 엿볼 수 있게 조성된 서측복도에서은 장종완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서측복도에 설치된 강은영 작가의 식물 설치작품.서측복도에 설치된 강은영 작가의 식물 설치작품.


공업용 다이아몬드와 사카린으로 코팅한 최고은의 샹들리에 설치작품.공업용 다이아몬드와 사카린으로 코팅한 최고은의 샹들리에 설치작품.


라운지를 지나 서측복도에 다다르면 즐비한 식물과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미술품을 선보였던 근대기 호텔이 미술관의 기능을 했다는 점에 착안한 기획이다. 박수근이 그림을 그려 팔았다는 화랑도 반도호텔 안에 있었으며, 지금도 대형 호텔은 예술작품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장종완·전현선·박경률·엄유정·황예랑 등 젊은 작가들의 그림이 벽면을 채웠다. 고급 샹들리에를 흉내낸 ‘짝퉁’을 구입해 공업용 다이아몬드 1만 캐럿과 2㎏의 사카린으로 코팅한 최고은의 작품은 호텔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사람들의 욕망을 풍자한다. 강은영 작가의 식물들, 나무를 깎아 꽃과 새를 만든 이동훈의 목조 조각들 사이를 지나면 분수에 도착한다. 작가 우지영은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들을 이용해 베르사유 궁전의 라토나 분수대를 본 따 만들었다.

푸하하하프렌즈가 공간을 디자인한 ‘오아시스 풀,바,스파’ 전경. /사진제공=KCDF 문화역서울284푸하하하프렌즈가 공간을 디자인한 ‘오아시스 풀,바,스파’ 전경. /사진제공=KCDF 문화역서울284


베르사유 궁전의 라토나 분수대를 서울에서 구한 재료들로 재구성한 우지영 작가의 ‘라토나: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베르사유 궁전의 라토나 분수대를 서울에서 구한 재료들로 재구성한 우지영 작가의 ‘라토나: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호텔은 먹고,마시고,자는 곳일 뿐만 아니라 사교와 문화가 펼쳐지던 곳이었다. 2층 옛 귀빈예비실 자리에는 ‘이발사회’가 꾸며졌다. 호텔 내 고급 이발소는 정치·경제계 거물들이 약속 없이도 은밀하게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장이었다. 호텔 이발실 경력 40년 이상의 원로 이발사 정철수 씨의 찰스바버샵 등 12팀이 예약 관람객에 한해 무료로 그루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대의 품격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그 옆 옛 귀빈실에는 호텔의 역사를 품은 자료들이 전시됐다. 반도호텔의 객실키를 들고 있으면 언제든 호텔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기에 “반년 치 연봉과 맞먹는 마패 이상의 가치”였다고도 한다. 호텔 실내수영장이 등장하면서 한때 유행한 니트로 제작된 수영복, 벨보이의 모자와 오래된 여행가방 등은 실제 서울의 호텔들을 통해 제공받은 것들이다. 볼거리는 많으나 바닥에 유리를 깔고 전시한 탓에 관람이 편하지만은 않고, 설명이 부족한 것이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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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식당인 ‘워커힐 퍼시픽 나이트클럽’에서부터 오늘의 ‘워커힐 씨어터’에 이르기까지의 워커힐 쇼의 사료들을 통해 호텔의 공연문화도 만날 수 있다. 1980년대를 중심으로 한 호텔 뷔페의 식기들과 김이박 작가의 설치작품들이 어우러져 흥미롭다. 옛 역사의 회의실들은 객실로 바뀌었는데, 작가 백현진은 매트리스 150개로 공간을 꽉 채워 ‘낮잠용 대객실’을 만들었다. 관람객이 신발을 벗고 올라가 누워 쉬거나 잠을 자도 된다. 작가가 매주 ‘자장가 연주’의 퍼포먼스도 펼칠 예정이다.

전시를 주관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지난해 같은 곳에서 ‘커피사회’ 전시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전시도 같은 맥락에서 호텔로 본 문화사를 고증과 상상을 버무렸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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