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 미국 소송과 관련해 100억원대 비용을 삼성이 대신 납부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 이명박(79) 전 대통령이 오는 19일 항소심 선고를 받는다. 실형 선고 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상태로 불구속 재판을 받아온 이 전 대통령이 재수감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만약 이 전 대통령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다면 총선을 두 달가량 남긴 상황에서 정치권에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경남도지사 임기를 보장한 김경수 2심 재판, 3·1절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시킨 박근혜 전 대통령 파기환송심 등 다른 주요 정치인들 재판과도 비교 대상에 오를 수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오는 1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선고 공판을 연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를 실소유하면서 349억원가량을 횡령하고 삼성전자(005930)가 대신 내준 다스의 미국 소송비 대납 분을 포함해 총 110억여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이 가운데 다스가 대납한 미국 소송비 중 61억여 원,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과 김소남 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에게 받은 23억여 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받은 10만 달러 등 85억여 원의 뇌물 혐의를 인정하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억여 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심 과정에서 지난 5월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이 전 대통령의 추가 뇌물 수수 혐의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넘겨받은 뒤 이를 공소장에 추가했다. 삼성이 2008년 미국 법인계좌에서 다스의 미국 소송을 대리한 로펌 에이킨 검프에 430만 달러(약 51억6,000만원)를 송금했다는 혐의다. 법원이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 혐의 액수는 기존 67억7,000만원에서 119억여 원으로 늘었다.
검찰은 지난달 8일 결심 공판에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23년을 구형했다. 세부적으로는 국고 손실 등 혐의에 대해 징역 6년과 벌금 70억원, 나머지 공소사실에 대해선 징역 17년과 벌금 250억원을 구형했다. 또 총 163억여 원을 추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소장에 기재된 모든 혐의를 유죄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검찰은 “비자금 횡령 액수의 경우 1심에서 인정하지 않은 비자금도 이 전 대통령이 만든 게 분명하다”며 “1심에서 무죄로 선고한 2008년 4월 이전 뇌물수수 범행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항소심에서 삼성 뇌물 51억원을 추가하는 취지로 공소장을 변경했는데 이는 국제사법공조를 통해 확보한 에이킨검프(다스의 미국 소송 대리 로펌)의 송장 등으로 확인이 된다”며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자신의 사익을 위해 남용해 헌법 가치를 훼손했으므로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전 대통령은 삼성그룹과 서로의 현안을 해결해줌으로써 정경유착의 전형을 보였고 전체 국민의 대표가 되기를 스스로 포기했다”며 “다스가 누구의 소유인지를 묻는 국민을 철저히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은 이런 잘못을 단 한순간도 인정하지 않았고 1심과 2심 재판에서 남을 탓하며 자신의 잘못을 회피했다”며 “국민에게 진정어린 사과도 단 한차례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무려 30여 분간이나 최후 변론을 펼치며 검찰 측 주장을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우선 재임 당시 금융위기를 극복한 성과와 한미 자유무엽협정(FTA) 체결 등 업적을 세세히 설명하며 “이명박 정부는 사리사욕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이 이명박 정부를 비리 정권으로 만드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야당 시절 특검 조사 때는 다스 소유권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결론이 나왔는데 검찰이 이번엔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억울해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은 현대건설 회장 시절 내가 현대 몰래 차명회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당시는 국산 자동차 부품 수출 위해 창업을 독려할 때였고 일본통인 우리 형이 일본 기술을 도입해 자동차 회사 만드는 걸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주도했다”며 “나는 전문 경영인이라 회사 모르게 창업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나는 지난 30년 간 다스 주식은 물론 배당도 받은 적 없다”며 “다스가 만약 내 회사라면 사장과 고문 등이 20년 간 횡령하도록 뒀겠느냐”고 검찰에 반문했다. 또 “놀라운 건 검찰이 (사장, 고문 등이 저지른) 거액의 횡령 사실을 밝히고도 기소를 안 했다”며 “오히려 횡령액을 만들어 내게 줬다고 진술했다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이와 함께 “뇌물을 월급 주듯이 매달 주면서 장부 처리를 하고 공개를 하는 대기업이 어디 있느냐”며 “검찰은 뇌물이란 범죄 만들기 위해 각본을 짜고 그에 맞춰 진술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사면한 것은 삼성 회장으로서가 아니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IOC 위원으로서 사면한 것”이라며 “공소장과 수사과정을 보면 검찰은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살인자로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 항소심 선고가 목전으로 다가오면서 그의 재수감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만약 실형이 선고되더라도 재판부가 법정구속을 명령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특정 피고인에 대해 보석을 허가한 재판부가 실형을 이유로 보석을 취소하고 그를 다시 구속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현 재판부는 지난해 3월6일 “주거지를 서울 논현동 자택으로 제한하고 외출을 제한한다”는 조건을 붙여 이 전 대통령 보석을 허가했다. 불구속 재판 원칙을 중시한 결과였다.
문제는 이 전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재수감될 경우다. 이 경우 그 파장은 총선 등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무죄 판결이 잇따르는 가운데 적폐청산에 대한 또 다른 공방거리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그가 재판을 보이콧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과가 빠르게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직권남용 부분을 다시 봐야 한다”며 재판을 3월 이후로 돌연 연기했다. 그 결과 박 전 대통령의 3·1절 특별사면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곧바로 ‘올스톱’됐다.
반면 김경수 경남도지사 2심은 지난해 12월 선고에서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결국 총선 이후로 미뤄졌다. 기존 재판장인 차문호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김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씨의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 시연회를 봤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며 이례적으로 유죄 심증만 밝히고 선고를 내리지 않았다. 이후 이달 초 차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인 최항석 고법 판사가 전격 교체됐다. 김 지사의 기전 재판부엔 법원 내 진보성향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주심 김민기 고법 판사만 남게 됐다. 법조계에선 그 결과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김 지사가 임기를 모두 무사히 마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총선 기간 전직 대통령이 또 다시 두 명이나 수감된 상황에서 김 지사 등 여권 인사만 혜택을 보는 셈이 돼 형평성 문제가 입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진단이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원로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을 풀어줬던 판사가 자기 손으로 다시 구속시킬 가능성은 낮다”며 “이 전 대통령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더라도 불구속 상태라면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공산이 크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