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사진) 농협중앙회장이 취임 한 달 만에 친정체제 구축에 속도전을 펴고 있다. 중앙회 산하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들을 대거 내보냈고, 김병원 전 중앙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이대훈 NH농협은행장도 퇴진시켰다. 이 회장의 친정체제 구축이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허식 부회장(전무이사), 소성모 상호금융 대표이사, 박규희 조합감사위원장, 김원석 농업경제(경제지주 산하) 대표이사가 이날 전격 퇴진했다. 이들은 최근 이 회장에게 사의 표명을 했고 사표가 수리됐다. 농협 측은 “퇴임 임원들이 지속 가능한 성장과 경제사업 혁신을 위해 용퇴했다”고 설명했다. 후임 인사는 중앙회 인사추천위원회 추천, 이사회 의결, 대의원회 선거를 통해 결정된다. 그때까지는 손규삼 이사가 전무이사와 상호금융 대표이사직을 대행하고, 조합감사위원장은 임상종 조합감사위원이, 농업경제 대표는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태환 축산경제 대표가 대행한다.
이번 인사를 두고 농협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속전속결’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농협 계열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예상보다 빨리 임원 교체 인사가 나왔다”고 말했다. 중앙회 관계자는 “관례적으로 새 회장이 취임하면 기존 임원들은 사의를 표명했고, 이번에도 그런 관례의 연장선”이라며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는 후속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대훈 농협은행장 퇴진도 다소 의외라는 시각이 많다. 이 행장은 김 전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지난 2017년 발탁됐다. 취임 1년 만에 농협은행의 당기순이익을 1조원대로 끌어올리고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며 농협금융지주 출범 이후 첫 3연임에 성공했다. 통상 2년(1+1년)인 농협금융지주 소속 최고경영자(CEO) 임기를 고려하면 ‘장수’한 셈이지만, 실적이 좋아 이 회장 체제에서도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농협금융의 한 관계자는 “신임 회장의 인사권을 존중하는 차원이 아니겠느냐”며 “은행장의 통상적 임기인 2년을 채운 만큼 본인이 소임을 다 했다고 판단하고 용퇴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지난해 말 이 행장의 3연임이 결정됐을 당시만 해도 농협금융에 성과주의 문화가 정착할 것이란 기대가 높았던 만큼 은행권 안팎에서는 이 행장의 사임을 두고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농협금융지주는 4일 첫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후임 행장 선임 절차를 시작한다. 홍재은 농협생명 대표와 최창수 농협손보 대표도 사표를 냈지만 반려된 것으로 알려졌다./세종=한재영기자·빈난새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