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3월9일 국부론 초판이 나왔다. 출판사는 영국 런던의 스트라한&카델사. 불과 한 달 전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1권’을 출간했던 이 출판사는 연이어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 4절판 2권 1,097쪽 초판 1,000권의 세트당 가격은 1파운드 16실링. 물가를 감안하면 요즘 가치로 최소한 36만원, 임금상승률 기준으로는 442만원에 해당하는 고가에도 반년 만에 다 팔렸다. 저자 애덤 스미스는 인쇄로 500파운드라는 큰 수입을 올렸다. 저자가 인정하지 않은 책이 돌아다닌다는 논란 속에 2년 뒤 출간된 2판(500부 인쇄)은 가격이 2파운드 2실링으로 올랐는데도 금세 동났다.
스미스가 사망하기까지 국부론은 다섯 번째 개정판이 나왔으며 독일어와 프랑스·러시아 등에서 번역판 출간이 잇따랐다. 국부론의 정식 제목은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 동서고금을 통틀어 국부의 증진이라는 주제로 스미스와 비슷한 주장을 펼친 사상가는 하나둘이 아니다. 사마천의 화식열전부터 ‘스미스 이전의 스미스’라는 토머스 스미스(16세기 영국 교수·정치인), 분업과 생산성을 강조한 15세기 초 이븐 할둔, 화폐수량설과 수요 공급의 개념을 제시한 사제 아스필쿠에타, 장 보댕과 더들리 노스, 조선의 박제가와 유수원까지 무수히 많다.
왜 유독 스미스의 국부론만 기억될까. 더욱이 한 번도 ‘경제학’ 교수였던 적이 없고 ‘경제학’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던 스미스가 ‘근대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나. 집대성한데다 근대세계경제가 막 형성되는 시기를 잘 만났기 때문이다. 국부론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경제이론서이자 역사서적이다. 일본의 은 광산까지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지만 손에서 놓기에는 아쉽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의 저자 토드 부크홀츠 전 하버드대 교수의 평가. ‘국부론은 좋은 책이 아니다. 위대한 책이다.’
스미스는 숙제도 남겼다. 19세기 말 독일학자들이 발견한 ‘스미스 문제(Smith’s Problem)’가 그 것이다. 스미스 자신이 가장 아꼈다는 ‘도덕감정론(1759)’에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은 인간끼리 돕는 정서에 가깝다. 국부론에 ‘보이지 않는 손’은 딱 한 구절 등장하지만 이윤 추구와 시장 만능주의를 옹호하는 전가보도처럼 쓰였다. 최근에는 ‘자유와 공감대를 가장 중시했다’는 해석이 많아지는데도 아무나 비슷한 이름을 붙이는 현상은 여전하다. 스미스의 생각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