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해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면서 교역 및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 한층 더 심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여파가 확산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12일 밝혔다. 특히 정유, 화학, 철강, 유통, 자동차, 항공, 전자 업종 등이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앞서 WHO는 지금까지 114개국에 11만8,000여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며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했다. 팬데믹은 WHO가 선포하는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이다.
S&P는 세계 각국의 도시들이 봉쇄되고 경제 활동에 차질이 생기면서 특히 교역 및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의 리스크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박준홍 S&P 이사는 “국내 기업들 중 올해 상반기 실적 저하를 보이는 곳이 많을 것”이라며 “자본투자와 주주환원 규모를 줄이는 등 유연한 재무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으로는 여행, 레저, 항공 산업을 꼽았다. 세계 곳곳으로 가는 하늘길이 막히면서 지난달 마지막 주 국제선 여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66% 감소했다. 인천국제공항 일별 이용객도 이달들어 연간 평균치의 약 10~20%에 그치면서 2003년 사스(SARS) 발병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S&P는 이미 지난 7일 한진인터내셔널의 신용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하고 하향 가능성을 열어뒀다. 2020년 하반기 채권만기가 집중된 것과 미국 호텔 사업의 운영 차질, 모기업 대한항공(003490)의 실적압박에 따른 리스크 확대를 반영했다.
공급망 차질과 생산 중단으로 타격을 입은 자동차 산업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현대차(005380)와 기아차는 자동차 부품 중 하나인 와이어링 하네스를 중국 부품사로부터 제때 공급받지 못해 지난달 말부터 일부 국내 생산라인이 정상적으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S&P는 이번 공급망 차질로 회사의 연간 판매량의 약 2%에 달하는 12만대의 차량 생산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공급과 더불어 수요도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돼 실적과 신용도가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유화학, 철강, 유통 등에 대해서도 수요 감소에 따른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 유가가 급락하면서 정유부문의 재고평가손실도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S&P는 올해들어 SK이노베이션(096770), GS칼텍스, LG화학 등 정유 및 석유화학 기업들의 신용등급과 전망을 잇따라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이밖에 현대제철, 이마트 등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투자정책과 수요 감소로 인한 현금흐름 악화로 향후 신용도 하방압력이 강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대부분 한국 기업이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차환용 자금조달 등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S&P는 “코로나19에 따른 실적부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등급을 부여하는 대부분 한국 기업들은 양호한 유동성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은행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고려할 때 대부분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원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