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정부기관을 상대로 처분 취소 심판 등 권리구제를 신청했다가 승소한 일반인 비율이 역대 최저인 한자릿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이른바 ‘윤창호법’이 시행되면서 운전면허 정지·취소 처분과 관련한 기각 처리가 대폭 늘어난 결과다.
19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이 기관 소속 중앙행심위에 접수된 전체 심판 사건 중 국민이 정부기관에 승소한 비율은 9.9%로 집계됐다. 지난 2010년 중앙행심위 출범 이후 2018년까지 단 한 번도 일반인 승소율이 15% 밑으로 내려갔던 적이 없던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기록은 매우 이례적인 수치다.
국민들의 행정심판 승소율이 크게 내려간 것은 전체 심판 사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운전면허 사건에서 승소 판정이 과거보다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중앙행심위는 지난해 운전면허 정지·취소 관련 전체 심판 사건 1만2,636건 가운데 1,230건(9.7%)에 대해서만 인용 결정을 내렸다. 2018년까지만 해도 인용률이 17.3%를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기존 대비 반토막이 난 셈이다. 운전면허 관련 사건 인용률이 전체 사건 인용률을 밑돈 것도 지난해가 처음이다.
운전면허 사건은 지난해 중앙행심위에 접수된 전체 사건의 56.2%를 차지할 정도로 매년 비중이 크다. 운전면허가 생계와 관련된 일반인들이 음주운전 적발 등으로 면허 정지·취소 처분을 당해 이를 번복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운전면허 사건 외 고용·정보공개·국방·법무·학교폭력 등 일반 사건의 인용률은 14.7%, 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참전유공자 관련 유공자나 유족 신청 등 보훈 사건 인용률은 3.7%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행정심판에서 운전면허 사건 승소율만 급락한 것은 윤창호법이라 불리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2018년 12월과 지난해 6월 각각 시행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들이 음주운전에 대해 엄중한 방향으로 인식이 변화하면서 중앙행심위 판단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윤창호법은 2018년 9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만취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사망한 윤창호씨와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게 하자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만들어진 법안이다. 음주운전 사망사고 시 가해자를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고 음주운전 단속 혈중알코올농도 기준을 기존 0.05%에서 0.03%로 강화한 게 핵심이다.
실제 인용률뿐 아닌 운전면허 사건 접수 건수도 2018년 1만6,872건에서 지난해 1만3,526건으로 크게 줄었다. 면허 정지·취소에 대한 불복사례 자체도 감소한 것이다.
행정심판은 행정기관이 부당하게 공권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을 때 법원 소송에 앞서 간편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 쟁송절차다. 해당 행정 처분이 있음을 알게 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청구서를 제출해야 한다. 행정심판법에 따라 중앙부처나 공공기관·광역지방자치단체 등과 관련한 사건은 중앙행심위가 처리하고 지역 시군구급 행정청 관련 사건은 지자체 행심위가 맡는다. 운전면허의 경우 경찰청과 관련한 사건이므로 모두 중앙행심위가 담당한다.
권익위 관계자는 “음주운전 사고 유발자에 대한 처벌 강화 요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올해에도 관련 사건 인용률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