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이 연기로 가닥이 잡힌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대기업 경영 차질까지 현실화하면서 ‘아베노믹스’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골자는 유동성 확대와 민간투자 촉진이다. 그러나 올림픽 연기로 수조원의 경제손실이 예측되고 일본 최대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국내 공장 생산을 일시 중단하는 등 기업 경영환경에 대한 전망도 점점 불확실해져 민간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올림픽 연기에 따른 경제손실은 최대 7조원에 이른다. 미야모토 가쓰히로 간사이대 명예교수는 닛케이에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 경제손실이 6,408억엔(약 7조2,587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코로나19의 충격을 감안하면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4%인 7조8,000억엔(약 89조7,450억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올림픽뿐 아니라 실물경제 전반으로도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요타는 일본 내 5개 공장의 자동차 생산을 일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해외 수요가 감소해 일본 내 공장 가동을 멈춘 것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닛케이에 따르면 도요타는 23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해외시장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내 5개 공장의 총 7개 제조라인 가동을 오는 4월3일부터 중단하고 생산라인에 따라 최대 15일까지 중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 기간 직원에게는 유급휴가를 권장하기로 했다.
도요타는 해외 거점인 북미·유럽·동남아시아·인도 공장 등의 가동을 잇따라 멈추고 있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금융위기 때는 중국 수요가 세계 경제를 견인했지만 지금은 견인역이 없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매년 발표했던 연간 판매량 전망치도 “지금 시점에서는 어렵다”며 공표하지 않았다. 닛케이는 코로나19로 신차 판매 수요가 크게 둔화해 생산·판매 양면에서 불투명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로 주식이 반토막 난 소프트뱅크그룹은 자산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알리바바 주식 140억달러(약 17조5,350억원)어치를 팔기로 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3일 전했다. 앞서 소프트뱅크는 이후 1년에 걸쳐 최대 4조5,000억엔(약 51조7,900억원) 규모의 자산매각 계획을 실행한다고 발표했다. 자산을 매각해 조성한 자금으로 최대 2조엔 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남은 자금으로 부채를 줄이겠다고 소프트뱅크는 설명했다. NHK는 “세계 증시가 하락하는 가운데 회사 주가가 급락하자 재무구조 개선으로 시장의 우려를 불식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경제 현실을 직접 보여주는 경제지표도 악화하고 있다. 금융정보제공 업체 IHS마킷은 일본의 3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와 제조업 PMI 예비치가 각각 32.7, 44.8로 집계됐다고 24일 발표했다. 서비스업 PMI는 2007년 관련 설문이 시작된 후 가장 가파르게 추락했다. 3월 제조업 PMI 예비치도 2월 확정치인 47.8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일본 제조업 경기가 위축세를 11개월째 이어가는 모양새다.
올 1·4분기 일본 GDP가 전 분기보다 연율 환산 3.0% 감소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GDP는 지난해 4·4분기 연율 기준으로 7.1% 감소해 5분기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에도 아베 신조 총리의 지지율은 반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언론 FNN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2월보다 5.1포인트 오른 41.3%를 기록했다. 지지율 상승은 올림픽 개최가 결정됐던 아베 정권 임기 내에 올림픽이 치러지는 것이 일관성 측면에서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코로나19가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응답자 10명 중 9명이 “우려하고 있다”고 답하면서 향후 경기둔화 움직임이 확산할 경우 아베 정권이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닛케이는 칼럼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한) 낭떠러지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며 “(아베 총리가) 현재 상황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