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후반기에 돌입한 문재인 정부가 시급하게 당면한 과제는 ‘규제 혁신’이라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으로 산업 지형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만큼 모빌리티·헬스케어·핀테크 등 신산업을 국내 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대표 선수로 서둘러 육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포스트 코로나’ 신(新) 산업 전략으로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한국판 뉴딜’을 천명했으나, 그동안 정부의 규제 완화 노력이 이익집단의 반발에 번번이 부딪혀 용두사미로 전락했던 점을 고려하면 전과는 다른 강력한 의지가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혁신 신산업의 출현을 위해 정부가 신구 산업의 갈등 뒤로 숨는 방관자적 모습에서 벗어나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규제 해결형’ 국가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산업 임시허가 200개중 20% 그쳐
글로벌 승차공유 기업 우버는 지난 2015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며 결국 법원으로부터 불법영업 판결을 받고 한국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국내 승차공유 업체는 어느 한 곳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해 심야버스 공유 서비스 콜버스와 2017년 카풀에 도전한 풀러스, 2018년 카카오 카풀, 그리고 올해 기사·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까지 규제에 막혀 사업을 아예 접거나 사업 방향을 튼 ‘잔혹사’가 이어졌다. 업체 이름과 서비스 종류만 다를 뿐, 이들은 하나같이 택시 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뜻을 꺾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풀러스·타다 같이 지자체나 택시 업계로부터 고발당해 송사를 치른 사례도 비일비재다.
코로나19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원격의료 역시 ‘암반’과 같은 이익집단에 가로막힌 해묵은 이슈다. 2010년부터 의사가 직접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의료행위를 하는 원격의료를 의료법에 규정하려는 입법 시도가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의료사고 위험성, 의료품질 저하 등을 앞세운 의료계의 반발에 한 발짝도 진전이 없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 헬스케어는 진료가 아닌 건강 진단 분야로 제한된 성장을 해왔다. 의료계는 유통·의료·관광 등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해 2011년 18대 국회 때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에 대해 역시 ‘의료 민영화를 허용한다’며 강력하게 저항해 결국 해당 법안은 9년 넘게 계류된 상태다.
규제에 얽매이지 않는 신산업 시도를 위해 지난해 1월 도입된 규제 샌드박스는 이익집단의 반발에 더해 공무원의 소극적인 규제 완화 시도에 성장판이 제약된 사례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 200건이 넘는 사업이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으나 이 가운데 20% 정도만 임시 사업허가를 따냈을 뿐 80%는 시범사업에 그쳤다. 공유숙박·택시동승 등 사업은 기존 업계를 의식해 각종 조건이 따라붙는 ‘조건부 승인’을 얻기도 했다.
포지티브 규제 등도 적극 타파를
전문가들은 이처럼 제자리걸음인 규제 혁파를 위해 정부의 ‘리더십 발휘’가 현재 가장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규제 완화가 어려운 이유는 △‘원칙 금지, 예외 허용’ 포지티브 규제 고수 △의료·노조·택시 등 산업 기득권 견고 △경제 정책에 정파 논리 개입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정부가 중심을 잡고 규제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타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구 산업 갈등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하나 상황에 따라서는 국정 최고 책임자가 강력한 의지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기왕 ‘한국판 뉴딜’을 제시했으면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인 제스처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세계적으로 산업 재편이 시작된 지금이 규제 완화 드라이브를 걸 적기라는 조언도 이어졌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다이내믹한 시장 경제 속에서 기업이 경쟁하고 살아남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새로 진입하려는 기업에 문을 대대적으로 열어야 산업구조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종=조양준·나윤석기자, 백주연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