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LG CNS 등 우량 대기업들이 최근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성공하면서 회사채 발행계획을 미뤘던 기업들이 다시 시장을 찾고 있다. 회사채시장의 온기가 저(低)신용 등급 기업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8일부터 이달 말까지 약 2조6,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같은 기간 만기물량 1조7,880억원을 크게 웃도는 액수다. 통상 5월은 회사채 시장의 비수기로 통하지만 최근 투자심리가 다소 호전된 가운데 최대한 현금을 확보해두려는 기업들의 수요까지 겹쳐 자금 조달 기업이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먼저 SK루브리컨츠(AA0)와 현대트랜시스(AA-)가 18일 각각 2,000억원, 1,600억원 규모의 사전청약을 받는다. 같은날 A급인 한솔제지도 700억원어치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뒤이어 LG상사·하나금융지주(19일), 현대백화점(20일)을 비롯해 만도, 삼천리, 포스코인터내셔널, 호텔롯데, 대림산업, KCC 등 22여 곳이 수요예측에 나설 계획이다.
기업들이 발 빠르게 회사채시장에 복귀한 것은 최근 수요예측 결과가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채시장의 발행금리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민평금리 대비 높은 수준에서 결정됐다. 정부가 조성한 채권시장안정펀드도 시장보다 싼 값에 발행물량을 사들였다.
하지만 지난달 말 현대차가 3,000억원어치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진행한 수요예측에 1조4,100억원의 뭉칫돈이 몰리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지난 7일 수요예측을 진행한 LG CNS는 1,600억원 모집에 9,300억원이 몰려 일부 트랜치에서 민평금리 이하(-3bp)로 회사채 발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시장이 얼어붙은 지난 3월 말 이후 민평 대비 마이너스 금리로 회사채가 발행된 최초 사례다.
기관들의 투자 수요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최근 기관투자자들은 CJ대한통운·롯데지주 등 AA급 뿐만 아니라 A급 기업들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증권사 회사채 담당자는 “수요예측 참여기관이 다변화되면서 매수세가 4월 대비 강하다”며 “유통시장에서도 단기물 위주로 거래가 재개되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반면 아직 안정세를 단언하기에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달 이후 발행시장이 쪼그라들어 인기 있는 일부 매물에 수요가 몰렸을 뿐 기업·신용등급별 양극화는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LG CNS와 같은 등급인 LS일렉트릭은 민평보다 11bp(1bp=0.01%포인트) 높은 금리에 회사채를 발행했다. 대한제당(+70bp), 하나에프앤아이(+80bp), 한일홀딩스(70bp) 등 A급 기업들은 차이가 더 벌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1·4분기보다는 2·4분기에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투심 회복 지연 요인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본격적으로 강등하기 앞서 조만간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경고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들어 신용등급 전망이 떨어진 곳은 파라다이스, 녹십자, 서연이화, 엠에스오토텍, 한화토탈, 와이지원, 파라다이스, 에쓰오일,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SK인천석유화학, 현대오일뱅크, 한화에너지, 에이치솔루션 등 14곳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