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로 재미 보던 게 정말 옛날 이야기가 됐네요.”
30대 회사원 강모씨는 주거래은행인 KB국민은행이 예금 금리를 인하한다는 소식에 이같이 말했다. 투자 성향이 안정 추구형인 강씨는 재테크 수단으로 오로지 예적금만 이용해왔다. 강씨는 “1년 묵혀둔 예금 이자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살 수도 없는 시대가 됐다”며 “지금이라도 주식을 해야 하나 고민된다”고 했다.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치인 0.5%로 인하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 인하가 시작됐다. KB국민은행이 가장 먼저 수신금리를 조정하면서 다른 시중은행들도 곧 금리 조정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1,000만원을 1년간 맡겨도 이자로 5만원밖에 받을 수 없게 된다. 0%대 금리시대가 현실화된 것이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주력 예금상품인 ‘국민수퍼정기예금’의 기본금리를 0.3%포인트 인하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8일 기준금리를 0.75%에서 0.5%로 인하한 후 시중은행 중에서 가장 먼저 수신금리를 조정한 것이다. 인하 폭도 예상 수준보다 컸다는 평가다.
이 상품의 1년 계약기준 기본금리는 0.9%였으나 이날부터 0.6%를 적용 받았다. 돈을 3년간 맡겨도 금리는 0.75%로 1%에 미치지 못했다. 1,000만원을 이 상품에 맡기면 1년 기준 세금을 제외한 이자는 5만원, 3년 기준 19만원에 그친다.
국민은행은 이 상품 외에 다른 수신상품의 금리도 잇따라 인하를 예고했다. ‘내 아이를 위한 280일 적금’을 비롯한 50개 상품은 오는 5일부터,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인 ‘KB우대저축통장’ ‘KB우대기업통장’은 8일부터 인하된 금리가 적용된다. KB국민은행 측은 “전체적으로 0.25~0.3%포인트 인하했다”며 “기준금리 외에 금융채 금리 추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은행이 예·적금 상품 금리 인하의 신호탄을 쏘면서 다른 시중은행도 금리 인하에 동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폭과 동일한 0.25%포인트 안팎 수준의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KB국민은행이 주력 상품의 금리를 생각보다 큰 폭으로 내렸다”며 “인하 폭과 인하 시기를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지만 기준금리 인하 수준 정도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이후 일주일도 안 돼 첫 금리 조정이 나올 만큼 은행의 수익이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의 올해 1·4분기 순이자마진(NIM)은 1.56%로 전년 동기보다 0.15%포인트 줄었다. 신한은행(0.2%포인트), 하나은행(0.16%포인트), 우리은행(0.14%포인트)도 모두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실시하면서 이자마진도 크게 줄었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아울러 현재 예·적금 외에 마땅히 다른 투자처가 없는 점도 시중은행의 금리 조정시기를 앞당기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KB국민은행의 요구불예금은 133조8,347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1,134억원 늘었다. 요구불예금은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한 부동자금이다.
시중은행의 다른 관계자는 “3월 기준금리가 인하됐을 때는 시중은행의 수신금리 반영까지 한 달 정도 걸렸다”면서도 “은행 입장에서 금리 인하에 따른 고객 이탈도 신경 써야 하지만 요즘은 대기자금이 많아 다소 부담이 적은 것도 사실”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