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전 MBC 예능 PD, 프리미엄 콜드브루 커피의 대중화에 도전하다” 커피 마스터 정의영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 ⑮] “콜드브루 커피가 모두의 일상이 되는 그날을 위해 매일 연구합니다.”


창업을 넘어 ‘창직 하는 사람(Job Creator)’들이 늘고 있다. 끊임없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 회사에서 찾지 못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숙제를 개인들이 스스로 고민해 찾게 된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직업을 새롭게 정의내리기 시작했다.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은 스스로 창직을 한,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인과 산업 두 영역에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두 번째 커리어를 꿈꾸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전하고자 한다.

프리미엄 콜드브루 커피의 대중화를 꿈꾸며 창업한 정의영 대표.프리미엄 콜드브루 커피의 대중화를 꿈꾸며 창업한 정의영 대표.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는 MBC 예능 PD로 입사했다. 2년간 계약직으로 일한 후 정규직 전환 즈음 파업이 시작됐고, 결국 그는 회사를 나와야 했다. 하지만 예능 PD의 꿈을 접기엔 아쉬워 다른 방송국으로의 경력직 입사를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는 콜드브루 커피를 만나게 된다. 동시에 콜드브루 시장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가격도 6배 이상 차이 나는 천차만별인 이 시장에서 맛있는 콜드브루 커피를 마시려면 꽤 부담스러운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여러 가게를 다니며 공부하며 맛을 보았지만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길 진짜 맛있는 커피를 찾기란 어려웠다.

비슷한 고민을 초등학교 친구들과 나누다 우리가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무모한 결심을 시작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연구하고 테스트하며 만들어본 끝에 ‘브루데이’라는 브랜드로 그들만의 콜드브루 커피를 완성했다. 콜드브루의 대중화를 꿈꾸는 브루데이의 정의영 대표를 만났다.

브루데이와 정의영 대표의 도전

- 어릴 때부터 예능 PD가 꿈이었나?

“어릴 때부터 PD가 꿈이긴 했다. 그런데 중학교 때까지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 시사교양 PD를 하고 싶었다. 신방과를 가야겠다 결심 후 대학에 갔는데,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예능감 있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고. 사람들 즐겁게 해주는 게 좋아 예능 PD로 언론고시를 준비 했다.”

- 오케스트라 동아리도 했다고?

“‘유포니아’라는 오케스트라 동아리였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비올라를 담당했고. 원래 어렸을 때부터 플롯을 오래 배웠는데 막상 그 악기는 경쟁이 너무 심해 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비올라를 다시 배운 후 무대에 섰다.”

- 음악을 전공할 생각도 있었는지?

“어머니가 음악을 하셔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음악으로의 진로는 어머니가 먼저 반대하셨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음악 하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 (웃음)”

- 방송국 입사까지 얼마나 걸렸나?

“3년 정도 준비했다. 방송국 입사 공고 뜰 때마다 전부 지원을 했다. 필기까지 간 곳도 있고, 면접까지 간 곳도 있고. 결국 MBC 예능 PD로 최종 합격을 했다.”

- 그런데 계약직 채용이었다.

“그렇다. 당시 MBC에서는 신입 자체를 안 뽑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계약직 채용 형태였지만 신입 공채처럼 진행 했다. 시험도 보고 면접도 빡세게 했고. 계약직으로 채용 후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되는 식이었다. 웬만큼 열심히 하면 전환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 결국 채용이 안됐다고?

“시기가 애매했다. 2년을 채우기 전, 중간에 경력직 PD 채용이 있었는데 그때 동기 중 일부가 경력직으로 함께 뽑혔다. 게다가 때마침 회사에서 파업이 시작됐다. 파업 후 2달 뒤면 계약직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끝나게 되었다.”

- 꿈꾸던 예능 PD 생활, 어땠나?

“사실 너무 힘들었다. 특히 처음 1년은 매우 고생 했고. 업무에 적응하는데도 일하는 동안에도 방황을 많이 했다. 그래서 초반에 좋은 평가를 못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부장님과의 면담에서도 이 길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내가 생각했던 것과 업무 환경이 달랐다. 처음 들어간 곳이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 팀이었는데 방송에 출연도 하고 재밌게 일했지만 업무강도가 너무 높았다. 예능국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팀이었다. 그러다 스스로 지쳐버린 것 같다. 꿈꾸던 직업이었지만 현실은 엄청난 잡무에 병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하루하루였다.”

- 그래도 막판엔 아쉬웠다고?

“몇 년을 목표로 공부해 이 자리까지 왔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판에는 자연스럽게 정규직 전환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결국 시기가 좋지 않았다. 중간에 내가 의사 표현을 잘 못하기도 했고. 결국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 이후의 커리어 계획은?

“2년간 쉼 없이 달리기만 했으니 일단 좀 쉬자 생각했다. 그 때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 두 명이 커피 사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사실 두 명은 나보다 먼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바빠 차마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못하고 있었다. 퇴사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고, 퇴사 후 3개월 만에 창업을 했다.”

MBC 마리텔 PD 시절의 정씨. 오래 꿈꿨던 방송국 생활은 2년 만에 끝났다.MBC 마리텔 PD 시절의 정씨. 오래 꿈꿨던 방송국 생활은 2년 만에 끝났다.


브루데이와 정의영 대표의 도전

- 콜드브루 커피에 주목한 이유는?

“테스트 형식으로 친구가 개발한 콜드브루 커피를 맛봤는데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커피는 습관처럼 마시던 거였지 맛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만들어준 커피는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마셔보니 상품력도 있겠다는 판단이 생겼고. 일단 지르고 서서히 체계를 잡아가며 브랜드 콘셉트나 지향점을 입혀 보기로 했다.”

- 함께했던 멤버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모두 초등학교 동창이고, 나 빼고 두 친구는 공대생이다. 그 중 한 친구가 원체 커피에 관심이 많았다. 샵인샵 개념으로 카페를 운영해보기도 했고. 콜드브루에 대한 아이디어도 그 친구가 처음 냈다. 다른 한 친구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개발자 하는 친구다.”

- 역할 구분은 어떻게 했나?

“일단 나의 경우 신방과 전공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대생 친구들이 못하는 모든 걸 맡았다. 아무래도 마케팅이나 홍보, 카피를 쓰는 것은 나에게 특화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브루데이’라는 이름도 내가 지은 회사명이다. 어쨌든 한 친구는 커피 전문, 다른 한 친구는 산업디자인 전문이라 나름의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었다. 비슷한 시기에 셋 다 퇴사 한 영향도 컸다.”

- 콜드브루의 현 시장 상황은 어떤가?

“콜드브루는 가격차가 굉장히 심한 커피 상품 군이다. 1리터 기준 5천에 파는 곳도 있고 3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 솔직히 5천원 짜리는 누가 마셔도 맛이 없다. 그런데 3만원 넘는 제품도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 이만큼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가격은 부담 없이, 하지만 정말 맛있는 콜드브루 커피를 만든다면 시장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 어떤 방향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었나?

“좋은 원두를 일정 기간 안에 알맞게 숙성된 상태에서 넉넉하게 원두량을 쓴다. 여기에 내리는 시간이나 온도를 잘 맞추면 정말 맛있는 콜드브루 커피가 완성된다. 넉넉한 좋은 재료와 정성이 정답이었다. 그런데 콜드브루 커피는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제품군이다. 좀 더 쉬운 추출방식도 있지만 우리가 고집하는 건 손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스타일이다.”

- 원가 비율이 높겠다.

“그렇다. 우리 커피는 좋은 원료와 원두 함량이 높기 때문에 당연히 재료 원가 비율이 높다. 사실 우리의 노동과 정성은 가격에서 많이 배제했다. 마진을 남기려면 원료에 대한 욕심을 좀 버려야 하는데 맛을 위해서라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냉동 트럭까지 구입해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영업했다. 왼쪽이 정씨.냉동 트럭까지 구입해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영업했다. 왼쪽이 정씨.


브루데이와 정의영 대표의 도전

- 브루데이, 어떤 의미인가?

“원래는 정기배송을 염두 해 만든 단어다. ‘Everyday Brewday’라는 슬로건도 만들었고. 매일 맛있는 커피를 즐기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정기배송 자체가 쉽지 않더라. 콜드브루 커피가 필수품고 아니고 주변에 카페는 너무나 많으니까. 아무리 맛있어도 자주 안 사게 되는 품목이었다.”

- 콜드브루 라인업으로 두 가지 브랜드를 만들었다.

“메인으로는 두 가지 브랜드를 만들었다. ‘써니사이드’라는 블렌딩 원두로 만든 제품은 밝고 상큼한 느낌의 맛이다. ‘블루문’은 고소하고 바디감이 있다. 카페 라떼로 먹어도 잘 어울린다. 처음에는 원두를 받아서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우리 스스로 직접 블렌딩 해 만들고 있다.”

- 거래처 확보는 어떻게 했나?

“우연치 않게 프랜차이즈 커피 업체를 알게 돼 납품을 시작했다. 지점이 여러 군데라 확실한 거래처가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그렇게 납품 위주로 거래처를 조금씩 늘려갔지만 그걸로 부족해 스마트 스토어에서도 팔기 시작했다. 직접 배달도 다닐 생각에 냉동 트럭도 구입했다.”

- 거래처와의 관계도 쉽지 않았다고?

“영업이 가장 어려웠다. 초창기에는 막상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잘 부탁드린다.’며 샘플 주고 나온 적도 많다. 일단 영업하러 왔다고 하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대표님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하다 보니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 시음 행사도 많이 다녔나?

“냉동 트럭도 구입했겠다, 초창기에는 인근 휴게소를 돌아다니며 시음 행사를 많이 했다. 2018년 여름 시즌이라 더운 시기였는데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어디 지나다니는 사람 많다더라 하면 다 같이 출동, 팜플렛 돌리며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다. 힘은 들었지만 덕분에 좋은 거래처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 소비자들의 맛 평가는 어땠나?

“2018년 말 처음으로 코엑스에서 진행한 커피 페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때 커피에 대한 반응들이 꽤 좋았다. 대규모 커머스 회사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이후 킨텍스에서 진행하는 디저트 페어에도 나갔는데 하나 둘 다녀보니 제품에 자신감이 어느 정도 생겼다.”

- 이후 실적이 좋아졌는지?

“초기 자본이 적기도 했고, 홍보에도 한계가 있어 매출이 금방 늘진 않았다. 우리 콜드브루 커피가 맛있다고 주장해도 마셔보지 않고 구매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샘플을 무료로 보내 보기도 했는데 재구매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 쇼룸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했다.”

맛을 위해 손 많이 가고 오래 걸리는 추출 방식을 선택했다.맛을 위해 손 많이 가고 오래 걸리는 추출 방식을 선택했다.


브루데이와 정의영 대표의 도전

- 원래는 공장으로만 운영했다고?

“원래 대화동에 커피 공장이 있었다. 월세가 저렴한 곳이었는데 작업 환경이 썩 좋진 않았다. 쇼룸을 만들어보자고 한 것도 소비자를 만나자는 취지도 있었지만, 우리가 일하기 쾌적한 곳으로 이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 쇼룸으로 이전할 때도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보다 ‘식품제조업’이라는 게 허가가 굉장히 까다롭다. 위생실과 준비실도 별도로 구획을 나눠야 해 없는 예산에 만드느라 고생이 많았다. 이사 온 쇼룸에도 처음엔 지하에 설비를 하려고 했는데 비용이 감당 안 돼 결국 1층에 만들었다.”

- 자본은 얼마나 들어갔나?

“대화동 공장 설립 때 4천만원 정도 예산이 들어갔다. 이후 기기를 구입하고 쇼룸을 만들면서 조금씩 비용을 쓰다 보니 전체 7~8,000만원 정도의 자본이 들어갔다. 지분은 세 명이 들어간 투자금대로 나눴다.”

- 쇼룸 운영은 잘 되고 있나?

“사실 잘 안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입지. 처음부터 공장 이전이 우선이었던지라 공간 규모가 중요했다. 처음엔 넓은 공장 중심으로 공간을 알아보기도 했고. 그런데 생각보다 월세가 비싸 이 참에 시내로 들어가자고 생각했다. 지금 있는 곳은 입지가 안 좋은 시내다.”

- 커피 만들고 손님 대하는 게 쉽지 않겠다.

“다행히 내가 영업이나 손님 대하는걸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단골들 오면 너무 반갑고 커피 맛있다고 이야기해주시면 참 행복하다. 공간 운영에 특별히 힘든 건 없다. 제품에 자신감을 가지고 팔다보니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공장을 만들며 동시에 소비자들과 소통할 쇼룸도 열었다.제대로 된 공장을 만들며 동시에 소비자들과 소통할 쇼룸도 열었다.


브루데이와 정의영 대표의 도전

- 콜드브루 매출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고?

“원두를 아낌없이 쓰니 원가 비율이 너무 높았다. 로스팅을 못한 이유가 컸다. 그 때부터 로스팅을 연구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스버너를 사용하는 용량 200g 짜리 로스터기로 시작했다. 수입 업체에서 생두를 사와 우리 스타일에 맞춰 블렌딩 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30프로 정도 원가 절감이 가능해졌다. 로스팅을 하니까 원두 판매도 가능해졌다. 콜드브루만 거래하던 업체에서 원두 거래까지 더해 매출도 조금씩 늘었다. 지금은 2kg 짜리 로스터기를 사용 중인데 올해 한 단계 더 큰 기계로 바꾸는 게 목표다.”

- 원두 로스팅 작업 과정은 어땠나?

“처음에는 원두 거래하던 업체가 문을 닫는다는 걸 알게 된 게 시작이었다. 그 때 블렌딩 배율이나 볶는 정도를 알고 싶었는데 당연히 절대 알려주지 않으셨다. 원두 업계의 영업 기밀이라 알려줄리 없었다. 그 맛을 우리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직접 로스팅 해 그 맛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덕분에 원두에 대한 지식이 어마어마해졌다.”

- 제품 판매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다.

“2018년 추석, 2019년 설 선물세트를 제작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주문량은 많은데 콜드브루 만드는 게 하나하나 수작업이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휴기간에는 거의 공장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는 콜드브루 사업 자체를 크게 키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회사 매출은 어느 정도 인가?

“요즘은 코로나 시국과도 겹쳐 많이 떨어진 상태다. 정확히 이야기하기엔 변동이 많아 숫자를 말씀 드릴 순 없지만 셋이 하기엔 매출 규모가 적은 편이다. 거래처나 일반 소비자 판매 수를 늘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업체 대표님들이 우리 제품이 좋다며 주변에 추천을 많이 해주고 계신다.”

- 브루데이의 비법, 누가 알려달라면 전수해줄 생각이 있나?

“우리 역시 절대 가르쳐줄 생각은 없다. (웃음)”

직접 블렌딩하는 기술까지 터득하며 어느덧 원두 전문가가 됐다는 정씨.직접 블렌딩하는 기술까지 터득하며 어느덧 원두 전문가가 됐다는 정씨.


브루데이와 정의영 대표의 도전

- 올해, 매출 증대를 위해 어떤 계획을 구상중인가?

“이제 막 오픈하는 가게들에 원두 공급으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원두를 팔아야 우리에게도 캐시 카우(Cash cow)가 된다. 콜드브루가 우리 브랜드의 지향점이긴 하지만 실질적 판매는 원두가 주력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지금의 생각일 뿐 내년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 거래처도 다양해졌다고?

“요즘은 PC방 거래를 점차 늘리는 중이다. PC방에서 커피가 의외로 잘나간다. 카페처럼 꾸미는 게 유행이라 그런지 커피 맛도 신경을 쓰는 추세다. 그래서 우리 원두가 꽤 인기 있는 편이다. 기업 행사 등에도 나가고 있고. 커피를 찾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 불경기인데 문 닫은 거래처는 없나?

“그래도 다행인건 거래중이 업체들이 아직도 성업 하는 중이다. 한 군데도 문을 닫지 않았다. 사실 거래처도 우리도 코로나 때는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괜찮아져 함께 힘을 내고 있다.”

- 쇼룸을 운영하며 느낀 점이 많다고?

“손님을 맞는 카페를 하다 보니 맛이 중요한 게 다가 아니었다. 스타벅스가 공간을 팔고 블루보틀은 커피를 판다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둘 다 잘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공간에 대해서도 조금씩 업그레이드 중이다.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방법도 고민 중이고.”

- 투자 받을 생각은 없는지?

“투자는 좀 고민되는 부분이다. 당장은 숨통이 트이고 좋을 거다. 하고 싶은 기기 구입도 할 수 있을 테고. 그런데 지금 상태로도 어떻게든 해볼 만은 하다. 우리가 좀 더 노력하면 되는 거니까. 남의 돈을 받는다는 건 아직 조심스럽다.”

- 우리나라의 커피시장은 어떤가?

“정말 카페가 많긴 많다. 그런데 커피 시장이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예전에는 기호식품이었다면 지금은 필수식품이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꼭 우리 커피가 아니어도 된다는 마인드가 있다 보니 팬 층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 친한 친구끼리의 사업, 애로사항은 없는지?

“친한 친구들끼리 사업한다니까 주변의 걱정이 많았다. 돈을 섞는 거에 우려도 하셨고. 그런데 막상 하다 보니 우리끼리의 큰 문제는 없더라. 셋의 성격도 다르고 각자의 역할도 분명하고. 오히려 서로 의지 되는 게 더 컸다.”

- 참 쉽지 않은 사업이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한 계속 할 예정이다. 아직 돈을 잘 못 벌고 있긴 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지는 것 같다. 동업자들과 의지하며 하다보면 조금씩 길이 생길 거라 믿는다.”

올해 더 큰 성장을 꿈꾸는 정씨. 그만의 스타일이 담긴 브랜드로 성장하길 바란다.올해 더 큰 성장을 꿈꾸는 정씨. 그만의 스타일이 담긴 브랜드로 성장하길 바란다.


원부연. 서울경제신문 라이프점프 객원기자. 전 광고 기획자에서 음주문화공간 기획자로 창직 후 술집, 극장, 살롱 등 서로 다른 9개의 공간을 런칭했다. <합니다, 독립술집>,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퇴사 말고, 사이드잡> 세 권의 책을 쓴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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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부연 객원기자

원부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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