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불붙은 ‘노점경제’ 논란이 리커창 총리와 시진핑 국가주석의 10여년에 걸친 경쟁관계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한때 최고권력을 다투기도 한 이들은 여전히 충돌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시진핑 방식의 정책이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에 대한 리커창의 발언권이 커지면서다.
발단은 최근 리 총리의 노점경제 추진이다. 리 총리는 지난달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6억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7만원)”이라면서 “노점경제가 서부의 모 도시에서 일자리 10만개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리 총리는 이어 이달 1일 산둥성에서도 노점경제를 ‘세일즈’했다.
그런데 며칠 만에 상황이 꼬였다. 시 주석의 핵심 측근인 차이치가 당서기로 있는 베이징시에서 6일 노점상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어 관영매체들도 일제히 노점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인자에 대한 비판이 1인자 몰래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영 신화통신에서 이달 초 하루 수십 건씩 올라왔던 노점경제 관련 기사는 7일 이후 뚝 끊겼다.
노점경제에 대한 논란은 시 주석과 리 총리 간 경제철학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지난 2007년에 함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후 1인자인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측근인 리커창을 밀었지만 2012년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와 2013년 전인대에서 시진핑이 결국 대권을 차지했다.
기본적으로 리 총리는 시장경제 요소를 확대해 보다 자율적인 경제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노점경제 같은, 상대적으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다. 이는 ‘리커노믹스’로 불린다. 반면 시 주석은 공산당이 강력히 통제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장했다. 이른바 공급 측 개혁이다. 2014년에 벌써 리커노믹스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졌다.
한때 10%를 웃돌던 중국 경제성장률은 2013년 7%대로 떨어졌다. 이에 시 주석은 원래 총리 관할인 경제 분야에까지 관여하며 중앙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등을 만들었다. 심지어 미중 무역협상도 시 주석의 측근인 류허 부총리가 담당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무역협상에 대해 류 부총리는 직속상관인 리 총리에게 자세히 보고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단순히 ‘고급관료’ 취급을 받던 리 총리에게 미중 무역전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기둔화는 기회가 됐다. 지난해 3월 리 총리가 전인대 개막식에서 경기부양책을 공개했을 때 큰 환호가 터져나왔다. 당시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들은 “리 총리가 1시간40분의 정부 업무보고에서 50여차례 박수를 받는 동안 시 주석은 내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결국 올해 들어 문제가 터진 셈이다. ‘6억명의 소득이 1,000위안’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가 나쁘다는 리 총리의 발언이 시 주석의 트레이드마크인 ‘전면적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실현’을 부정하는 듯이 들리면서 1인자의 불만이 커진 것 같다.
물론 공산당과 국가가 강력히 통제하는 현행 경제정책이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리 총리가 입을 다물고 있을 리도 없다. 1인자에게 한참 떨어지는 2인자지만 그래도 정권의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